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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빛, 흔적으로 남다 _ 닐 쉐리프
분홍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채의 조명은 빛의 흔적으로 남은 작가의 작품과 만나서 결과적으로 변화된 빛의 형태를 보여준다.

영국 사진가 닐 쉐리프의 작업은 변화하는 빛에 대한 탐구와 실험결의과 물이다.
 

 

Light Movement 116 in 135 ⓒ Neil Shirerff

 

 

Light Movement 135 in 116 ⓒ Neil Shirerff

 

포획된 빛들
사각형의 반듯한 틀에 둥글고 작은 패턴들이 형형색색 가득하다. 빛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꾸준히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영국 사진가 닐 쉐리프(Neil Shirreff)의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Light movement>는 빛의 움직임과 흔적을 기록한 것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루미노그램(Luminogram) 즉, 장노출 혹은 여러 번의 노출을 통해 빛이 움직인 흔적을 이미지로 남기는 방식이다. 그는 암실 역할을 하는 어두운 스튜디오 천장에 조명을 설치한 후 둥근 구멍을 뚫는다. 그 구멍에 컬러 필터를 덮고 인화지에 노광을 주는데 어떤 부분은 단 한 번에, 그리고 어떤 부분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노출을 준다. 그와 동시에 구멍과 틈 사이로 빛이 새어나간 흔적이 같이 남는다. 이렇게 빛은 그 시작점에서 중간의 여과 장치를 거쳐 색을 가진 흔적으로 감광지에 남는다. 결국 유형의 오브제가 아닌, 빛이라는 형체가 없는 대상이 색으로 인화되는 것이다. 빛을 색채화 함으로써 흔적으로 기록하는 작가의 작업은 현대의 디지털 사진 프로세스에서 간과되는 빛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셈이다.


그의 작품은 마치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다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다시 실험적인 방식으로 빛을 더해 촬영하고, 그 결과물을 이미지화하거나 설치해 보여주는 방식을 시도한다. 어느 정도 빛의 노출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LED조명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의 전시장에서 이런 시도는 빛을 발한다. 12가지 스펙트럼을 가진 LED조명을 작품 아래 설치해서 그 빛이 작품에 닿도록 한다. 분홍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채의 조명은 흔적으로 남은 빛과 만나서 결과적으로 변화된 빛의 형태를 보여준다. 빛의 흔적에 또 다른 흔적을 더한 것이다. 과도하게 노출된 빛의 반점은 고정된 색상과 LED조명이 지닌 색에 따라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마치 착시현상처럼 보이기도, 또 영상작품처럼 보이는 이유다.

 

 

Winter Lights_Light Movement Magenta in Cyan_01 ⓒ Neil Shirreff

 

Winter Lights_Light Movement Magenta in Cyan_04 ⓒ Neil Shirreff

 

빛에 대한 호기심
닐 쉐리프 작업은 빛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만의 침실에서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어두운 방에 앉아 그는 디스코 볼이나 실내등 혹은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서 천장에 빛의 흔적을 만든 다음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놀이를 반복한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만의 공간에서 행해지는 이 과정은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영감을 제공한다. 이후 스튜디오에서 계획을 통해 조명 활용과 과정이 어느 정도 구체화 되면, 그것이 곧 작품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눈앞에 놓인 결과물을 보고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작품을 보면 왠지 모호한 느낌이다. 닐 쉐리프 역시 작품에 거창한 의미나 구구절절 설명을 담지 않는다. 그의 사진의 핵심은 빛이 만들어낸 흔적과 이미지를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중요한 것은 빛이라는 대상 그 자체와 그 빛을 민감하게 반응시켜 보여주는 과정, 그리고 재료들이다.” 라고 말한다. 이렇듯 그에게는 사진을 탄생시킨 빛에 대한 궁금증 자체가 작품의 소재이며 그 과정이 주제인 셈이다.

 

Light Movement No.01 ⓒ Neil Shirreff

 

Neil Shirreff
빛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나의 실험처럼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상상력을 작품으로 구현해낸다. 이 외에도 움직이는 피사
체를 여러 분절로 나누거나, 빛을 조각화하는 등 사진의 기능과 관련된 요소들에 의문을 갖고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영국 런던을 기
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http://www.neilshirreff.com


 

김영주 기자  2021-08-19 태그 닐 쉐리프, 추상사진, 흔적, 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