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북&컬처

그날의 역사
댄 존스(Dan Jones)와 마리나 아마랄(Marina Amaral)은 흑백으로만 기억되는 격동기 세계사를 컬러로 복원했다.

아편전쟁, 대공황, 청일전쟁, 스페인 독감, 히로시마 원자폭탄, 한국 전쟁 등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흑백사진이 컬러사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각인된 혹은 세뇌된 기억들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흑백사진은 위조된 역사일까
1839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다게레오타입’이 발표된 이후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지금이야 사진 속 총천연색 풍경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역사가 단조로운 흑백 필름에 기록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생기는 의문점이 있다. 흑백으로 표현된 역사의 한 장면이 당시 현장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세상을 뒤흔들었던 흑백사진 속 사방으로 흩날리던 핏방울이 실제로는 꽃잎이나 흙가루였다면 우리는 어떤 오늘을 살고 있었을까.


<역사의 색: 이토록 컬러풀한 세계사>(윌북 펴냄, 김지혜 옮김)는 1850년부터 1960년까지 촬영된 2백여 장의 사진을 엮은 책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굶주리는 수용자들의 모습, 체 게바라와 피델카스트로가 만나는 순간, 레닌과 스탈린이 젊은 시절 함께한 모습 등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특징은 본디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을 디지털 작업으로 색을 복원했다는 것.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진들은 우리에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크림전쟁에서 냉전으로, 증기기관 시대에서 우주 시대로, 제국의 시대에서 초강대국의 시대로 시공간을 넘나들게 될 것이다. 저자인 댄 존스(Dan Jones)와 마리나 아마랄(Marina Amaral)은 흑백으로만 기억되는 격동기 세계사를 컬러로 복원함으로써 ‘역사의 색’을 찾고자 한다. 당시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혹자는 색을 입힌 것이 위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되레 흑백이 위조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세상은 늘 색을 갖고 있었으니까.





유럽 Europe


라이트 형제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는 동력 장치를 갖추고,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를 시험 운행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으며, 마침내 1908년 한 시간 이상 떠 있을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었다. 이후 윌버 라이트는 1912년에, 오빌 라이트는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항공기는 이미 대서양을 횡단했고, 음속의 벽을 깼으며, 원자폭탄을 투하해 한 번에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벌어졌다.


장기불황
스웨덴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1875년 사망한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가 촬영한 이 사진은 ‘장기 불황’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1873년 5월 9일 하루 동안 빈의 증권시장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1873년 공황으로 알려진 일련의 금융 쇼크가 촉발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물가와 임금이 폭락했고, 실업이 증가했다.


스페인 독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해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스페인 독감’은 극심한 근육통, 두통, 급격한 체온 상승과 심한 기침을 유발해 폐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인플루엔자였다. 사상자의 절대치라는 차원에서 스페인 독감은 흑사병, 에이즈 유행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독감이 진정된 후에도 5천만 명에서 1억 명이 감염되었는데, 이는 세계인구의 3~6%에 해당한다.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는 위협적이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대중연설가였다. 그는 평범한 독일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도전적인 언어를 사용했고, 청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주는 재능이 있었다. 또한, 히틀러는 열정적인 선동가이고 무자비한 당 지도자로서 나치당의 준군사조직과 군국주의 청년 운동의 발전을 촉진시킨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게티즈버그 전투
남북 전쟁 중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1863년 7월 5일, 알렉산더 가드너와 그의 조수 티모시 오설리번이 촬영한 사진이다. 게티즈버그 전투로 리 장군(남부 연합 침략군)의 북부 침공은 사실상 중지되었으며, 남부 연합이 무력을 통해 독립을 보장받거나 노예제를 영속시킬 수 있는 어떤 교섭도 완전히 차단되었다.





대한민국 Korea


명성황후
1894년부터 1895년 사이 청일 전쟁의 결과는 고종에게 크나큰 압박이 되었다. 그는 일본의 이해관계에 맞춰 정책을 수립해야 했다. 이는 고종의 아내이자 왕비인 명성황후에게는 특히 불편한 일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를 주장하는 전통적인 유교 가치를 거스르는 인물이었고, 군사 개혁, 전면적 근대화, 서양과 적극적인 문화적·경제적 접촉을 포함하는 정책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청일 전쟁 이후 명성황후는 일본의 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조선의 더 긴밀한 관계를 주장했다. 사실 명성황후의 사진은 드물다. 게다가 사진 속 여성의 신원도 정확하지 않다. 안전을 위해 궁녀들이 명성황후처럼 차려입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43세 나이로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 자객의 검에 시해되었다는 것.


한국 전쟁
1948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부가 남북 지역을 통치했고, 각 정부는 경쟁 관계인 강대국들의지원을 받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했다. 북한군은 연승을 거두며 한반도의 남단으로 향했고, 10월에는 중공군이 대거 투입되어 병력이 강화됐다. 이 사진은 그 시기에 촬영된 것으로, 포항 전투에서 북한군 부상병을 포로로 잡은 남한군 병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중국 China


청일 전쟁
1894년 3월 친일 개화파였던 김옥균이 상해에서 살해되었다. 6월에는 청과 일본의 긴장이 고조되어 일본이 8천 명의 원정군을 조선에 파병해서 고종을 포로로 잡고 친일 내각을 수립했다. 결과는 청과 일본 사이의 전면전이었다. 8월 1일에 전쟁이 선포되었고, 영국 해군을 모델로 탁월한 해군력을 구축한 일본이 승리했다.


아편 전쟁
1860년 8월, 영국과 프랑스가 승리를 거둔 직후 펠리체베아토가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에 담긴 주검들은 1850년대 초 크림 전쟁을 특징짓던 피 한 방울 없는 전쟁 사진에서 탈피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개월 뒤 영국 군대는 원명원에서 값비싼 도자기와 보물들을 약탈하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 굴욕을 당한 청 황제는 도주했고, 영국과 프랑스에게 매우 유리한 징벌적 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 Japan


러일 전쟁
1904년 2월 8일 전쟁이 터졌다. 일본군이 뤼순항에 정박한 러시아 함선을 어뢰 공격하며 시작된 포위 공격은 11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러시아가 항구를 포기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육상에서의 전쟁은 무자비했다. 1905년 2월 20일부터 3월 10일까지 전개된 봉천 전투에서 양측전사자가 무려 15만 명을 넘었다. 이 사진은 러시아의 부상병을 치료하는 적십자사 소속 일본 간호사들을 보여준다. 1905년 적십자사 일본 지부는 회원이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1945년 봄, 도쿄를 포함한 일본 도시 10여 곳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8월 6일, 에놀라게이라는 이름의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급이 전혀 다른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아침 출근 시간, ‘리틀 보이’라는 암호명의 4천 킬로그램 급 우라늄 폭탄이 폭발해 12제곱킬로미터의 도시를 날려버렸고, 첫 폭발 순간부터 그해 말까지 1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LIFE>의 버나드 호프먼이 1945년 9월 촬영한이 사진은 한때 분주한 도시였지만,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히로시마를 보여준다.

 

김영주 기자  2021-03-26 태그 역사의색, 컬러사진,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