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포토 스토리

기억수집가 / 양승욱
양승욱은 너무 흔해서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일상의 오브제들을 수집한 후 낯선 장소에 낯설게 배열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기억과 감정을 정리한다.


Moving-day, <Fast Toys> 시리즈


Stairs, <Fast Toys> 시리즈


Washstand, <Fast Toys> 시리즈

양승욱에겐 수집벽이 있다. 주로 장난감을 모은다. 수집은 어렸을 때 먼저 하늘로 보 낸 형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 형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형과의 추억이 배 어 있던 장난감들이 하루아침에 집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건이 어린 양승욱에 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라진 것과 같은 것을 찾기 위 해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그 수가 기 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모으는 것이 끝난다면 형에 대한 추억 역시 사라질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 탓이었을 것이다.
<Fast Toys> 시리즈는 이렇게 장난감을 모으는 데서 시작됐다. 특이한 점은 작업에 사용된 장난감들 중에 새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탔던 것들이 대 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필요가 없어진 것들의 ‘쓸모 있음’이 양승욱에 의해 다시 증 명된 셈이다. 작가는 장난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을 수집한다. <Fast Toys> 속 반듯하게 정렬된 수많은 장난감들을 보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압감도 느껴진다. 양승욱은 이 작업을 통해 세상에 버려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버린 것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쯤 해봤으면 하는 것이 작업의도인 셈이다.
장난감을 모으다 보니 가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생긴다. 예전에 해외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장난감을 대량으로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세관에서 통과가 안 된다는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세관에서 양승욱을 판매업자로 의심한 탓이다. 작업 계획서를 세 번이나 보내고 나서야 장난감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장난감 몇 개 를 해외에 사는 친구에게 보냈는데, 친구가 놀라서 전화를 했단다. 상자에서 해진 인 형들이 계속 나오니까 인형 뱃속에 마약이 있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었다. 졸지에 장난감과 마약 밀거래상이 됐던 순간이었다. 또 작년과 올해는 예상치 못한 국가적 재난상황 때문에 힘이 들었다. 장난감을 사려면 중고시장에 가야 하는데, 계속 문을 닫았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Fast Toys>는 작년에 끝났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작업이 중단된 셈이다.
실제로 그는 점점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장난감들을 보며 엄청난 스트 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한 번은 버리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수 천 개 중에서 하 나를 버리는 것도 아까워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 점점 작업이 삶을 옭아매는 굴레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조만간 이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작가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작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남보다 앞서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저 배만 채우기 위한 패스트푸드(Fast Food)처럼 우리의 기억도 빠르게 소비되는 패스트메모리(Fast Memory)가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양승욱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재학 중이다. 2014년 대전 Gallery NUDA에 서 첫 번째 개인전 ‘Rendezvous’ 를 개최했다. 단체전은 2010년 ‘선심초심’을 시작으로 2015년 ‘디지털 아르텍스모다 2015’까지 총 4회 참여했다.

월간사진 기자  2015-10-2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