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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사진과 회화 사이 _ 게르하르트 리히터
최근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다룬 영화 <작가 미상>이 개봉했다.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의 삶과 작품이 서로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Ice, 1981, Oil on canvas, 27 9/16×39 3/8 in. (70×100cm), Collection of Ruth McLoughlin, Monaco

 

Vesuvius, 1976, Oil on wood, 28 3/4×41 5/16 in. (73×105cm), Frame: 33 3/16×43 7/16×3 1/2 in. (84.3×110.3×8.9 cm), The Long View Legacy Trust, LLC

 

살아있는 거장에 주목하라는 뜻일까.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전시 <Gerhard Richter : Painting After All>이 7월 5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작가 미상>이 개봉했다. 영화에서 그려지듯, 젊은 시절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쟁,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겪었다. 그가 경험했던 시대만큼이나 작품 역시 어두운 톤, 모호한 형상, 적막한 풍경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이다. 사진을 있는 그대로 모사한 ‘포토 페인팅(Photo Painting)’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분명 유화 작품인데, 언뜻 보면 마치 초점이 나간 사진처럼 착각하게 된다. 잡지나 신문에 나온 사진, 그리고 자신의 가족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고 붓질로 윤곽을 흐릿하게 표현하는 작업 방식으로 기존 회화와는 차별화된다.

 

Betty, 1977, Oil on wood, 11 13/16×15 3/4 in. (30×40cm), Museum Ludwig, Cologne. Loan from private collection, 2007

 

동독에서 출생한 그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기존 관념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회화를 추구했다. 당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사진이었다. 사진은 미술과 달리 특별한 양식도 없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또렷한 이미지보다 흐릿한 장면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림의 표면을 뿌옇게 처리했다. 리히터는 특정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실제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는 세계대전으로 세상을 떠난 삼촌, 정신병을 앓던 이모의 사진을 비롯해, 신문에 나온 정치 및 사회 관련 사진들이다. 어린 시절 경험한 아픈 기억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작업에 반영되었으리라. 그 외에도 리히터는 자신이 촬영한 성당, 해안가, 겨울바다 같은 풍경사진도 모사했다.

 

Cathedral Corner, 1987, Oil on canvas, 48×34 1/4 in. (122×87cm), Collection of Samuel and Ronnie, Heyman, Palm Beach

 

Group of People, 1965, Oil on canvas, 66 15/16×78 3/4 in. (170×200cm), Private collection

 

예술가가 지닌 대상에 대한 다른 관점과 주관이 회화에 개입되지만, 사진은 분위기, 인물 표정, 빛, 기운을 카메라가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리히터가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선택한 사진과 이를 모사한 회화의 상관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예술은 농담이 아니기에 진지해야 한다.”라던 그의 말처럼, 작가의 지나온 삶과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이는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도록 한다.

김영주 기자  2021-01-19 태그 게르하르트 리히터, 모사, 회화,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