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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이방인의 시선 _ 루퍼트 넬슨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루퍼트 넬슨이 기록한 1950년대 한국이 담긴 사진집 <헬로 코리아>에는 당시 외국인의 눈에 비친 그 시절 한국인의 모습이 있다.

 

 

부산항에서 시애틀로 향하는 마린 서펀트호 갑판 위의 루퍼트(가운데). 한국전쟁을 위해 올 때는 5천 명이 왔는데, 갈 때는 4천 명이었다. 항해는 2주간 계속됐다.


자이스 이콘 카메라에 비친 한국
미군을 태운 군함이 인천 앞바다에 정박했다. 수심이 얕은 탓에 배는 항구에 바로 다다를 수 없었고, 스웨터를 입은 미군들이 추위를 견디며 육지를 바라봐야 했다. 그 속에 20대 초반의 병사 루퍼트 넬슨(Rupert Nelson)이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3.8선 인근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에서 자이스 이콘(Zeiss Ikon) 카메라를 구입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적인 풍경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차들이 멈추면 아이들이 다가왔다. 1월의 추운 날씨인데도 남자아이는 맨살을 내놓고 누나에게 안겨 있다. 1954년 1월

 

옮길 짐을 찾고 있는 지게꾼들이다. 1953년 9월

 

그땐 그랬지
1950년대 사진 대부분이 흑백인 것과 달리 그의 사진은 컬러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미국의 평범한 20대 시골 청년이었던 당시 루퍼트 넬슨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주변을 기록했다. 농촌의 모내기 풍경, 어린 동생을 안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 등. 그래서인지 전쟁 상처나 폐허의 흔적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소박한 일상이 담겨 있다. 이는 “한국에서 지낸 13개월은 나의 첫 외국생활이었고, 미국에서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한국 농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자란 미국 중서부의 시골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헬로 코리아>에 글을 쓴 한윤정(전 경향신문 기자) 역시 “전후의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천진함과 희망이 배인 아이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게 인상적이다.”라고 했다.

 

 

 

농부들이 모내기하는 것을 미군 병사가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다. 1953년 6월

 

다시 찾은 그곳에서
한국전쟁 당시 굶주린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농업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태국 북부 산악지역에서 30년 동안 농업선교사로 지내고 은퇴했다. 한국을 떠난지 40년이 흐른 1992년,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참전 당시 한국에서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서울에 이어 춘천과 화천을 찾았다. 논과 밭 그리고 폐허였던 곳들이 활기 넘치는 도시로 변한 모습에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당시 춘천 시내에는 폭격 때문에 성한 건물이 없었는데 언덕 위 카톨릭 교회와 그 아래 집들은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953년 여름

 

춘천 거리 풍경, 사진관과 금은방 등 상점들 사이로 사람들이 북적인다. 1953년 여름

 

지프차를 세차하며 목욕하는 미군들. 1953년 8월


캠프 생활
루퍼트 넬슨은 측량을 위해 산봉우리에 올라갔을 때 전선 여기저기에 흩어진 사체를 수거하는 한국군 병사를 마주하곤 했다. 그런 암울한 상황과 더위를 잊고자 무더운 여름날이면 동료 군인들과 캠프 주변 강에서 목욕이나 세차, 수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웃으며 더위를 잊고 싶었던 그 강에서도 해골이나 뼈가 발견되곤 했다고. 해골을 자기 얼굴에 가면처럼 가져다 대며 장난을 치던 동료 군인도 있었다. 루퍼트 넬슨은 그 모습을 보며 애써 웃었지만, 사실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USO쇼,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유명 배우 페니 싱글턴이다. 병사들이 겨울용 털모자를 쓰고 있다. 1953년11 월

 

미군병사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년에게 전투식량을 건네고 있다. 1954년 1월

 

천막교실, 전쟁 후 천막에서 학교 수업이 진행되던 시절. 1953년 9월

 

전쟁과 아이들
루퍼트 넬슨이 종전 무렵에 촬영한 사진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등장한다. 미군을 붙잡고 무언가를 받아내는 아이들이나 유엔군이 설치한 천막교실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끔찍했던 전쟁을 힘겹게 버티던 아이들에게 시선이 향한 것이다. 종전 후, 그를 선교사의 길로 이끈 모든 시작점은 한국의 차가운 현실을 이겨낸 아이들이었던 셈이다.

 

 

 

 

 

 

 

한국군 막사. 그 앞에는 나무로 빨래걸이를 만들었다. 1953년 8월

 

춘천, 1953년 여름

 

장비 교체를 위해 서울(현재 한국은행 앞)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울역이 있다 1.953년 여름

 

보따리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 소녀, 1953년 10월

 

마을 공동우물 뒤로 임시 교실로 쓰는 천막은 유엔군이 설치한 것이며, 그 옆 교실은 새로 지은 것이다. 1953년 9월

 

헬로, 코리아
1954년 초, 루퍼트 넬슨은 동기 네 명과 함께 미국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년이 넘는 한국 생활을 뒤로하고 떠날 생각에 그는 안도감과 씁쓸함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18시간 걸리는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시애틀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기차에서 보낸 그 시간이 마냥 길게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 처음 도착한 날 음식을 구걸하며 길을 서성거리던 아이들과 가난한 마을 풍경은 미국에 돌아와서도 영원히 기억에 남았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으로 새겨져 있다.

 

 

김영주 기자  2020-12-23 태그 루퍼트넬슨, 눈빛,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