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포토 스토리

심상용 관장의 사진칼럼
선과 악 -피파 바카의 〈여행 중인 신부들〉로부터

선(善)과 악(惡)
피파 바카의 〈여행 중인 신부들〉로부터 

 

“상상의 악-현대예술의 주된 내용인-은 낭만적이고 다채롭다. 실재하는 악은 단조롭고 삭막하고 지루하다. 상상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도취시킨다.” -시몬느 베이유-

 

《백색의 봄》전 & 〈여행 중인 신부들〉

    2010년 7월 14일 서울대학교 미술관과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의 협력으로 《백색의 봄(primavere del bianco)》전이 열렸다.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의 문화적 전통에서 흰색(whiteness)의 의미를 대조해 보는 것이 전시의 취지였다. 자중해 문화권에선 주로 빛, 순결을 의미하는데 반해, 한국에선 부재나 여백의 의미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탈리아의 작품들 가운데 피파 바카(Pippa Bacca)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행위예술가 주세피나 파스콸리노 디 마리네오(Giuseppina Pasqualino di Marineo)를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띤다. 동료 작가 실비아 모로(Silvia Moro)에 의해 촬영된 사진 안에서 피파는 흰색 신부 드레스를 차려입고, 코리치아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중이다. 《백색의 봄》전의 큐레이터이자 피렌체 국립미술원 교수인 비토리아 비아지(Vittoria Biasi)는 그 사진에 흰색에 대한 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사진은 피파와 그녀의 동료 실비아가 함께 기획한 퍼포먼스 〈여행 중인 신부들(Brides On Tour)〉(2009.3.8.–5.9.)이 진행되는 중에 촬영된 것으로, 그 의도는 평화와 존중이라는 탈종교적이고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달허기 위해 편견 없이 만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례로 피파는 여행 중 만난 지역의 조산사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백색의 봄》전은 흰색으로 충만해 제목처럼 화사했다. 사진 속에서 피파는 조금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맑고 순전한 미소를 머금은 채다. 하지만, 정작 《백색의 봄》전이 개막될 때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관리자 기자  2024-05-0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