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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빛, 퀼트 그리고 사진 _ 사라 판데어비크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해 만든 작업은 과거와 현재, 부재와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곡선과 대각선, 삼각형 등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사진이다. 어스름한 새벽녘과 저물녘이 연상되는 색 덕분에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해 만든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부재와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Setting Sun I, 2017, 2 digiat l c-prints, 52.1 x 38.1 cm

Rising Moon III, 2017, 2 digiat l c-prints, 52.1 x 38.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퀼트와 사진의 상관관계

러시아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 미학이 연상되는 바바라 카스텐(Barbara Kasten)의 작업이 부드러운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느낌이다. 구성적이고 조형적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인 것이 참 많이 닮았다.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것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혼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 시대성까지 반영한다. 사라 판데어비크는(Sara VanDerBeek)는 ‘발전하는 기술과 그에 따른 사진의 문화적 위상’, ‘진짜를 본다는 것’과 ‘상상한 이미지’의 간극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그는 직접 제작한 3차원 정물과 조각을 촬영해 얻은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변형시킨다. 최근에는 기하학적 패턴이 드러나는 ‘퀼트’를 소재로 작업한다. 퀼트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나 모사 등을 넣고 바느질하여 누비는 것 또는 그러한 천’을 가리킨다. 그런 퀼트와 사진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퀼트와 사진 모두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하는 일종의 행위라는 것이다. 실과 바늘, 손재주가 발전했음에도 ‘바느질’이라는 퀼트의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진화했지만, ‘사진 찍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과거를 연결하고,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은 직접 제작한 조각을 촬영한 다음, 네거티브 필름을 스캔하고, 디지털 색채 전문가와 톤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레이어들을 겹쳐최종 결과물을 완성한다.

 

구성적이고 조형적이지만, 바바라 카스텐과는 대조적으로 조금은 차분한 색이 인상적이다. 새벽녘과 저물녘의 색이 감도는 것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촬영을 위한 인공조명이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빛에서 탄생한 색은 이미지 가독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덕분에 아직은 눈에 보이지만 이내 사라질 것 같은 사진 속 오브제와 패턴에 집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시각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작업을 마주하고 있으면, 오브제와 패턴의 형태, 공간 등이 표면 위로 천천히 떠오른다. 복잡해 보이는 형태는 되레 단순하며, 심지어는 희미하기까지 하다. 이를 가능케 한 사라 판데어비크의 ‘빛 효과’는 존재와 부재 사이를 유영하게 하는 듯하다.

 

Roman Stripe IV, 2016, diptych; 2 digital c-prints each, 246.1 x 124.1 cm (each farmed), 246.1 x 255.9 cm (overall)

Labyrinth, 2016, diptych; 2 digital c-prints each, 246.1 x 124.1 cm (each farmed), 276.5 x 255.9 cm (overall), Edition 1 of 3, 2 APs,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Quilt Study I, 2016, 2 digiat l c-prints, 52.1 x 37.5 cm

 

새벽녘과 저물녘의 빛

‘빛’을 다루는 여느 작가들처럼,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도 추상적이다. 기술(조각을 만들고, 사진을 후보정하는 등)과 예술의 융합이다. 빛이 선사하는 색과 선의 향연은 관객이 보는 행위에 더 깊이 관여하도록 한다. 다만, 그는 작업에 약간의 의미를 부여한다. 사라 판데어비크가 어스름한 시간대의 빛과 색을 이용하는 건 퀼트 및 사진 행위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무엇인가가 전환되는 새벽녘과 저물녘은 마치 과도기와 같다. 퀼트와 사진도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과거로부터 이어진 퀼트를 역시 과거로부터 이어진 사진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고대 느낌의 석고상과 그릇 등을 촬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상기하고, 이와 소통하는 것이다. 결국, 빛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부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사라 판데어비크는 전시장을 시적으로 구성한다. 공간에 작업이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 사유의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과 작업 사이를 느슨하게 연결한다. 여유가 있어야 공간 안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건 당연지사다. 여느 추상예술을 감상하는 것처럼, 기하학적인 그의 작업 형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가 작업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시공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관찰과 경험, 공간, 시간 등의 키워드를 둘러싼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추상예술 감상의 끝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Sara VanDerBeek 미국 출생. 본다는 관점에서 ‘진짜’와 ‘상상한 이미지’ 사이의 거리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직접 만든 3차원 정물과 조각 등을 촬영해 얻은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초기 사진술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뉴욕 쿠퍼 유니온 대학교(The Cooper Union of Art and Science)를 졸업했다.

 

Women & Museums I, 2019, dye sublimation print, 243.8 x 121.9 cm

Women & Museums VI, 2019, dye sublimation print, 243.8 x 121.9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박이현 기자  2021-08-19 태그 사라 판데어비크, 빛, 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