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포토 스토리

별빛이 내린다 _ 민완기
‘별과 빛’으로부터 시작된 민완기 작업의 목표는 우주라는 거시적인 세계와 개인을 둘러싼 일상, 즉 미시적인 세계를 결합하는 것이다.

 

“여기가 우리의 보금자리고 바로 우리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우리가 들어 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우리가 확신하는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 , 모든 영웅과 겁쟁이, 모든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이 태양빛 속에 떠다니는 저 작은 먼지 위에서 살다 갔습니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별 그림 빛 그림

1990년 2월 14일,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도 아래 지구를 촬영한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을 본 칼 세이건은 감동에 휩싸여 책을 집필하는데, 그것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지구를 찍은 사진과 이를 묘사한 글은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이야기한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등바등 사는 삶 속에서 겸허함을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칼 세이건은 인간을 우주 속에서 특권 의식을 지닌 오만한 존재가 아닌, 서로 존중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별과 빛’으로부터 시작된 민완기의 작업은 기술적·감성적인 면에서 <창백한 푸른 점>과 비슷한 결을 지닌다. 언뜻 보면 공상과학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몽환적인 사진이지만, 민완기 역시 칼 세이건과 마찬가지로 그 사진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의 작업을 살펴보자.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천문 사진이다. 망원경과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별과 달’ 사진을, 일상이 담긴 풍경 사진에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산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설경을 연상케 하는 사진, 별똥별이 쏟아지는 듯 보이는 장면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아울러 민완기의 작업은 말 그대로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는 빛을 흡수함으로써 이미지를 고정하는 필름 프로세스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빛 자체를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 없는 사진에 도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현상을 하면서 필름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펀치로 구멍을 뚫고, 알코올과 끓는 물을 필름에 붓는 등 다양한 물리·화학적 조작을 시도했다. 게다가 4 x 5, 8 x 10 필름을 땅에 묻어두기도 했다. 그렇게 묻어둔 필름은 햇빛과 달빛에 노출되고, 그것을 꺼내 현상할 때 교반 탱크에 흙을 넣어서 흙 입자를 필름에 드러내는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매체 실험적인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우주 그리고 개인의 삶과 일상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더 거창한 말을 쓴다면 ‘윤회’를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업의 모티브는 ‘별과 빛’이다. 민완기는 ‘4ㆍ16 세월호 참사’, ‘동일본 대지진’ 등의 사건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주하게 됐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죽음이 다가올 수 있겠구나’라는 상상이 더해지니 불안감은 더욱 극대화됐다.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한 것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었다. 문득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별 하나하나가 지구를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으로 보였다. 자연스레 별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빛으로 확장됐다. 빛의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천문학을 공부했고, 결국 사진에 천문학을 결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으레 우리는 죽음이라 하면 깜깜한 암흑의 연속일 것이라고 믿지만, 죽음(별의 폭발)은 이내 빛으로 바뀌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필름에 변형을 가하더라도 빛은 여전히 존재한다. 필름을 땅에 묻는 행위는 땅에서 태어난 인간이 산화 과정(빛에 노출되고, 눈과 비를 맞는 것)을 거쳐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민완기의 작업은 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덕분에 거부감 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정보가 없다면 작업이 독특한 실험에 집중하는 것인지, 특정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예쁜 이미지로 인해 작가의 메시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그는 스스로 “아직 생과 사를 다루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최신 작업으로 올수록 맥락보다는 사진을 찍고 결합하는 기술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완기 작업의 목표는 우주라는 거시적인 세계와 개인을 둘러싼 일상, 즉 미시적인 세계를 결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작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우려도 있다. 이상적인 것은 메타포로 가득한 작업의 투 트랙(기술적, 감성적)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일 텐데, 현재로서는 그의 관심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무게가 기울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은 세대와 개념 등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이러한 천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작업의 내적 결속력을 다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민완기 천문사진과 스트레이트 사진을 결합,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진가다. 미국 뉴욕 SVA ‘Photography, Video and Related Media’ 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공간291 ‘2019 신인작가 공모’에 최종 선정됐다. www.wankimin.com

 

 

박이현 기자  2021-07-20 태그 민완기, 별빛이내린다, 삶,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