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TV로 접한 이산가족 상봉 장면. 헤어진 가족을 애타게 찾던 그들 대부분은 아주 오래전 사진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진의 의미를 생각하면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고인에게는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남은 이에게는 떠나간 이를 추억하는 유품이다. 실제로 유교 문화에서는 망자를 위한 제사 문화가 있고,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고인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조선시대를 지나고 20세기에 들어 그것이 사진으로 대체된 것이다.
최근에는 영정사진 대신 ‘장수사진’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영정사진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나이에 무관하게 기념의 의미로 영정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10년 넘게 영정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고 있는 고려영정의 이지수 대표는 “과거에는 무표정한 사진이 일반적이었다면, 근래에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 자연스럽게 촬영된 장면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생전에 직접 요청해서 촬영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밝게 웃으며 바람에 머리가 휘날릴 때처럼,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보다는 밝은 느낌으로 촬영을 진행한다.”라고 말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영정사진에 대한 인식과 촬영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영정사진을 찍는 이유
‘영정’이라는 단어와 ‘젊음’이라는 단어가 같이 쓰인다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최근 영정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젊은 모습을 미리 영정사진으로 촬영해놓는 것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가 홍산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젊은이들의 영정사진을 촬영한다. 그는 “요즘 청년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바라는 이상적 기준을 맞추며 사는 것을 힘들어한다. 특히 취업 문제에 있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통념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대안적 의미에서 영정사진을 찍는 것 같다. 또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터부시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좀 더 현실의 어려움에 의연해지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현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기대하는 바와 달리 그들이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은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실에 대해 마냥 좌절하기보다는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조금 더 의연하게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이처럼 영정사진을 촬영한다는 의미다.
또 다른 사례로 지난 2018년 여름에는 3명으로 이루어진 팀 ‘김김박’의 <27살 김유진씨, 영정사진 찾아가세요>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형태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이 팀은 청년들에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이에 답한 뒤 그들의 영정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인상적인 것은 타인이 아닌 참여자들이 자기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은 촬영에 참가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프로젝트 김김박의 팀원이었던 김보경 씨는 프로젝트에 대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대상자들 중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다가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죽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들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에 남녀노소 상관없이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당시 프로젝트에 젊은이들 대부분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 사회에서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나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 등이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최근 20, 30대가 처한 상황은 대체로 절망적이고 어둡다. 하지만 촬영을 마친 뒤 참가자들이 느낀 점은 촬영 전과는 정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마주하고 표현한 뒤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자는 마음이 생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등 그 소감은 긍정적이었다. 마냥 절망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참여자들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촬영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가 하면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죽음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기회가 된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어떤 이가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한다. 책을 방이나 책상에 쌓아두거나, 자신의 짐 등을 어느 공간에 두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반면 삶에 대한 의욕이나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짐이나흔적을 없애거나 버린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젊은이들이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어보고 경험하는 경향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사진이라는 흔적을 남긴다는 행위 자체가 긍정적이며, 삶과 미래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희망과 도약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주형일(2019), 『사진과 죽음』, 커뮤니케이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