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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이(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관대우)의 Voice
맥락을 만드는 선수들: 개념미술과 사진 그리고 갤러리스트

 

맥락을 만드는 선수들: 개념미술과 사진 그리고 갤러리스트 

오진이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관대우) 

큐레이터, 미술사가, 미술복원가들에게 두루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초대형 회화 작품이 있다. 일명 ‘컴바인 페인팅’의 창안자로 유명한 미국 미술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바지선 (Barge)> (980 x 203cm 1962-63) 이다. 신문, 방송 등 새로운 이미지가 쏟아져나오는 시기에 미술이 처한 상황이 총체적으로 담겨져 있는 이 작품은 구석구석의 메시지들이 모두 강력하지만, 그 중에서도 작품의 중앙부 하단 이미지가 특히 유명하다. 자유형으로 물살을 가르고 있는 수영선수 사진 이미지를 복제해 놓았고 바로 그 아래 서명을 대신하는 듯 작가는 자신의 손바닥 자국을 찍어놓았다. 사진과 미술가의 손자국이라는 두 종류의 이미지 컴바인은 수많은 신생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지난날의 라이벌인 회화와 사진이 동일한 상황에 놓였다고 확대해석이 가능할까.

전통적인 예술 작품, 특히 회화와 사진의 관계는 경쟁으로 시작되었다.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는 재현의 텃밭을 떠나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영역을 개척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추상미술이라는 새 영토를 일구었다. 이렇게 서로 독립적인 영역을 성장시키고 있었던 듯한 사진과 현대미술은 20세기 후반 다시 연결되는데, 개념미술과 같은 당시 가장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지지했던 소수의 갤러리스트들의 역할이 컸다. 그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피셔 갤러리와 베허 부부의 사진 작업이다. 1967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콘라드 피셔 갤러리를 연 피셔(Fischer)는 몇 년 뒤 아직 30대였던 독일의 젊은 사진작가인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사진을 개념미술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고 미국 미술 시장과 나아가 MoMA 등 영향력 있는 미술관급 전시로 뻗어나가는 길을 열었다. 아직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는 작가를 발굴해서 자신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그 전시를 통해 다른 갤러리와 비평가, 컬렉터가 그 작가를 알게되게끔 하는 것이 갤러리스트의 역할이다. 그런데 공들여 만든 많은 전시가 잠시만 회자되다가 혹 그마저도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혀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갤러리스트 피셔가 연 베허 부부의 사진 전시는 어떤 점이 달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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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기자  2024-12-06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