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미래의 시원
2024.12.03-12.22 | 부천아트벙커B39
프로젝트 총괄 기획: 정훈 | 공동 기획: 고동연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전쟁의 기억과 후기억, 그리고 동시대성이 얽히면서 형성하는 독특한 시간성을 탐구하는 전시가 열린다. 사진, 설치, 영상, 음향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서사를 제시하며, 한국전쟁의 문화적 기억이 오늘날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확장되는지 사유할 기회다. 폐기물 소각장에서 예술 공간으로 변모한 부천아트벙커B39에서, 1950년대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 故한영수를 비롯해 삼사십 대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총 14명의 다매체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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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미래의 시원 : 새로운 서사를 위한 시간 이미지
정훈 / 프로젝트 총괄 기획자, 사진영상이론가
≪우발적 미래의 시원≫은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이하는 현재, 전쟁의 기억과 후기억,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동시대적 현실이 뒤얽힌 현재의 시간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우발적 미래’는 한국전쟁의 예기치 않은 유산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지정학적, 사회적, 개인적 상황을 가리키는 동시에, 전시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미래의 출발점임을 암시한다. 전시 공간에서 비선형적으로 드러나는 시간의 얼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점을 형성하며, 한국전쟁 기억의 현대적 ‘시원(始原)’으로 자리한다.
전시의 구성과 맥락은 들뢰즈의 ‘비-연대기적 시간’ 개념에 기반하여, 과거의 잔재와 미래의 잠재가 내재적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연루된 현재의 시간(기억)을 성찰하도록 설계되었다. 전시장 부천아트벙커B39는 이 메타적 의도를 체현하는 공간이다. 폐기물 소각장에서 예술 공간으로 변모한 이곳은 과거의 흔적을 재맥락화하는 열린 서사의 장이자, 파괴와 창조가 공존하며 새로운 서사가 태동하는 복합적 장소이다.
전시는 부천아트벙커B39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다섯 개의 전시 섹션과 한 개의 퍼포먼스 섹션으로 구성된다. 에어갤러리(1F)와 에어갤러리 발코니(2F)에 마련된 ‘기억의 환승’은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흔이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경험 속에서 어떻게 상징화되고 재매개되는지를 다매체 설치 작업으로 탐구한다. 안성석의 작업은 거창추모공원의 기울어진 위령비를 현대적 시각 언어로 재해석하며, 관객 참여를 통해 역사적 기억이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코니에 전시된 임노아, 조은재, 김의로의 작업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트라우마의 풍경, 사회적 단절, 그리고 신체의 서사를 통해 복합적인 문화적 층위를 형성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중앙제어실의 ‘우발적 미래’는 전후 일상 공간에 스며든 전쟁 후기억의 문제를 탐구한다. 한영수의 사진 <닭장수>(1957)는 전후 서울의 삶에 남아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시각적으로 환기하며, 안성석의 영상 작업은 영화 《오발탄》을 재매개하여 1950년대에 잠재된 트라우마의 단층을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드러낸다.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1999)은 미공군 폭격 연습터의 풍경을 통해 트라우마적 시각과 현대 지정학적 문제를 교차적으로 다룬다. 마지막으로, 이재갑의 사진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학살 현장에 세워진 증오비와 위령비를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의 흔적이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남긴 균열을 비추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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