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ilmn]
사진 뒤에 감춰진 신화와 그 이데올로기
폴 샴브룸(Paul Shambroom)의 핵무기 사진
심상용(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신성한 것이 우리 주변에서 만개하고 있다.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은 신화들이...”
-자크 엘륄(Jacques Ellul)-1)
냉전 종식으로 핵무기의 정당성이 철회될 거라는 희망은 헛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천 개가 넘는 핵탄두를 배치하고 있고, 첨단기술로 무장한 핵무기체계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핵클럽'에 새로 가입했다. 미국의 사진작가 폴 샴브롬은 미군 당국의 협조 아래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6개 주 20여 개의 핵무기 지휘 시설, 수백 개의 개별 ICBM 저장고, 핵탄두, 잠수함, 폭격기 등을 촬영했다. 샴브룸이 로버트 J. 리프턴(Robert J. Lifton)의 글 「실체 탐구: 핵의 ‘종말’을 넘어서」(1986)를 인용해 밝힌 바에 의하면 촬영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을 거울삼아 우리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그제서야 그 너머를 보는 것이 가능할 거로 여겼기 때문이다.
2003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WMD)의 존재를 빌미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라크 영토 내에 그런 무기는 없었다. 정작 전 세계를 몇 번이고 파괴할 수 있을 만큼인 1,700~2,200개의 핵탄두들이 작전 배치된 땅은 미국이었다.? 그 엄청난 수의 핵탄두들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의 답은 명쾌하다. “미국의 핵무기는 여전히 억제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하려는 시도의 무익함을 강조함으로써 잠재적 경쟁자의 출현을 막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해 미디어 작가이자 일리노이 대학 뉴미디어학과 교수인 벤 그로써(Ben Grosser)는 콧방귀를 낀다. “있지도 않은 무기를 회수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와 대체 어느 나라가 경쟁을 벌일 엄두라도 내겠는가.” 그로써에 의하면, 이와 관련하여 보다 심각해 보이는 진실이있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나 있지도 않은 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킬 때나 백악관은 의회의 승인 없이 자금을 지원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나? 그것이 신성하거나 숭고한 결정임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 샴브룸, 1메가톤급 핵폭탄, 루이지애나주, 1995.
신화와 이데올로기
‘신성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등진 것으로 보이는 근대 속으로 대량 유입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에 깊이 각인된 원천적인 결함 때문이다. 합리적인 인간의 광기와 야만, 더는 숨길 수조차 없는 그것을 언제까지 되풀이해 경험해야 할까.
1) 자크 엘륄, 『새로운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 박동렬 옮김 (논산: 대장간, 2021) p.128.
/
전문은 사진전문매거진
<월간사진> 11월호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