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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도시의 발견 _ 신병곤
신병곤의 도시 3부작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의 구조적인 측면을 바라본다.

 

<도시미분법(Urban Differentiation)>

 

상징적 상상력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신병곤이 <도시미분법>을 발표한 시점부터 마천루의 절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작품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느낌이다. 잠시 책을 접고, 스마트폰 SNS 애플리케이션에서 ‘도시’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해본다. 너나 할 것
없이 강남대로와 세종대로 한복판에서 <도시미분법>과 비슷한 결의 사진을 찍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고층 빌딩 단면들이 중첩된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미분법>은 ‘역사를 증명하는 장치로서의 도시 사진’이 아니다. ‘압축되어 깨어진 공간 이미지와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중첩함으로써 도시 공간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데’ 의의가 있는 작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건물이 모여 있는 3차원 공간을 잘게 나누어 면으로 ‘미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탄생한 2차원의 도시 파사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도시를 재해석 및 재구축하게 만든다. <도시미분법>을 보고 건물 절단면의 재료와 질감, 패턴 등에 집중하는 해석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요소들은 신병곤 작업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면에서 보면, 이러한 요소들은 현실의 앞면과 뒷면을 구분하는 지표로만 작동한다.


우리에게 신병곤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작업은 도시 3부작 중 제일 먼저 공개된 <도시미분법>이다. 하지만 기실 도시 3부작의 처음은 <도시천문학>이다. ‘공간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한 장의 사진 안에 압축해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도시천
문학>은 ‘천문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도시의 별빛을 보며 무언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천문학에 바치는 연서 또는 헌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수백 장의 도시 야경을 조합해 만든 새로운 (건축물 같은)
풍경은 ‘실재 대상에 의해 환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도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도시통신학>이다. 도시에 산재해 있는 건물들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병렬화해 건물의 독창성, 창작성(Originality)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통신망에 연결된 컴퓨터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방법에 관한 규칙’인 프로토콜(또는 통신규약)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도시에 많은 건물이 있지만, 각자의 개성이 사라졌음을,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진 위에 과감하게 배치된 선은 도시 건물의 광역화된 모습을 상징한다.

 

 

<도시통신학(Urban Telematics)>

 

미분에서 적분으로
도시와 건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신병곤의 연작을 통해 인간 감각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점처럼 보이는 ‘풍경 조각’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제작한 <도시천문학>에선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반짝이는 ‘순간’만을 기억하지, 세세한 내용은 무의식 저편 은밀한 곳으로 밀어낸다. 이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은 밤하늘을 보며 추억의 은하수를 헤엄치듯, 도시 불빛 아래에서 ‘나의 도시’를 상상하고 보여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한편, <도시미분학>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인간의 시야를 연상케 한다. 원근감이 제거된 건물의 절단면이 이를 대변한다. 시간이 지나서야 주변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모든 사건이 날카로운 단면처럼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도시통신학>은 미래의 어느 지점을 상상할 때 시간 및 무게감과 상관없이 사건(혹은 꿈)이 나열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사건(혹은 꿈)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하나의 미래가 되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도시 3부작’은 서사가 없다. ‘도시라는 건 복합적 구조체인데, 도시를 다루는 작업이 너무 감성적인 것은 아닌지’라는 일종의 심리적 반발이 작동한 탓일 테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에는 광고판과 전깃줄 같은 서사의 곁가지들이 없다. 보는 이가 도시 구조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 개의 작업이 일체가 돼야 상상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 <도시천문학>과 <도시미분학>, <도시통신학>은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비록 순서는 다를지라도 점과 선, 면도 발견할 수 있다. 미분에서 출발한 작업이 적분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 이들 시리즈 안에서 1차원부터 4차원까지 전부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안을 유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를 해석하고 상상하는 것은 온전히 보는 이의 몫이다. 신병곤의 역할은 그저 도시를 해체하고 결합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뿐이다. 도시를 둘러싼 서사에 도용하지 않고, 그 어떤 개입도 강요하지 않은 채. 당신의 서사 없는 환상을 위하여.

 

신병곤 도시의 구조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작업을 한다. 이동훈, 임다윤과 함께 사진가 그룹 ‘소셜 포토(SOCIAL PHOTO)’를 조직했다. 주로 문화 잡지와 건축 분야에서 일한다. 4월 19일부터 6월 23일까지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열리는 <공간기억>에 참여한다. www.plutoshin.com

 

<도시천문학(Urban Astronomy)>

박이현 기자  2021-07-20 태그 신병곤, 도시, 미분, 적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