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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우연, 인연, 필연 _ 구본창 그리고 안드레 겔프케
사진이 맺어준 안드레 겔프케와 구본창의 35년 인연.

구본창의 멘토 안드레 겔프케(André Gelpke)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내면과 의식,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사진의 대가 안드레 겔프케, 그리고 한국의 대표 사진가인 구본창에게 사진이 맺어준 35년 인연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구본창과 안드레 겔프케, 2019년 11월

 

현재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구본창의 개인전 <Incognito>(~2020.1.11)가 진행 중이다. 허름한 공간, 쓸쓸하고 해석이 모호한 풍경, 그런데도 숨 가쁘게 압박하는 도시의 혼란을 익명으로 포착한 신작 <Incognito>와, 198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흑백 사진 작업 <긴 오후의 미행>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를 기념해 구본창의 멘토인 독일 사진가 안드레 겔프케(André Gelpke)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안드레 겔프케는 대상을 감정 없이 차갑게 묘사하는 사진을 통해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멘토와 멘티가 드디어 한국에서 만났다. 청년 구본창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가 되었는데, 소감은 어떠한가.

[ 구본창 ] 사실 만나기까지 먼 길을 돌아온 것은 아니다. 198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헤어진 이후 (잠시 연락이 끊기기도 했지만)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2014년 스위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때도 만났다. 당시 안드레 겔프케와 이듬해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내 작업실에 방문한 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에 돌아간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었다. 하지만 출발 직전 건강이 안 좋아져 무산됐다. 30여 년을 벼르던 한국행이 이제라도 실현되어 감개무량하다.

 

[ 안드레 겔프케 ] 멘토·멘티 관계가 아닌, 친구라고 생각한다. 처음 구본창을 만났을 때 그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하지만 이제는 조언할 말이 없다. 지금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반열에 오른 사진가가 아닌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아름다운 그의 사진을 보니 매우 행복했다. 예전에는 일본 사진이 한국 사진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했는데, 지금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일본 사진은 강렬하지만,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고, 성적으로 개방된 것도 있다. 반면, 한국 사진은 조용하고 명상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오늘날에는 구본창의 작업처럼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사진이 필요하다.

 

André Gelpke, <Fluchtgedanken>, 1972~1979

구본창, Seongnam, South Korea, 2019

 

1984년 독일 유학 당시, 무작정 안드레 겔프케를 찾아간 일화가 궁금하다.

[ 구본창 ] 함부르크에서 공부할 때 원인 모를 갈증이 있었다.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도무지 해답을 찾지 못하던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안드레 겔프케 작업을 만났다. 서점에서 본 그의 사진집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실마리를 제시해 줄 것 같았다. 졸업을 몇 달 앞둔 1984년 가을, 전화번호부에서 안드레 겔프케 번호를 찾아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달음에 뒤셀도르프로 향했다. 내 사진을 본 그는 “한국 학생인데, 네 냄새가 안 난다. 여느 유럽 작가가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함부르크에선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겔프케를 만나기 전에는 브레송이나 로버트 프랭크 같은 도시 스냅,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찍은 사진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함부르크로 돌아가 졸업 작품을 전면 수정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때 탄생한 작업이 <1분간의 독백>이다. A컷이 아닌,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B컷들로 제작했다.

 

단순히 조언만 해주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 구본창 ] 한 번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세미나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베르나르 포콩과 헬무트 뉴튼을 만났다.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사진 이야기를 나눴던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함부르크에 살던 자신의 친구 밀란 호라첵(Milan Horacek)도 소개해 줬다. 그는 사진 작업도 했지만, 일본의 사진가 에이전시 PPS(Pacific Press Service)를 통해 유럽 사진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 당시 밀란 호라첵은 한국에 돌아갈 때 PPS 사장 로버트 킬슘바움(Robert Kirschenbaum)을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잠시 인사 나누고 사진 보여주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됐다. PPS에서 <일본의 하루(A Day in the Life of Japan)>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향이 있냐고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세계 100명의 사진가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일본의 하루를 촬영하는 프로젝트 덕분에 일본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왼쪽) André Gelpke, <Fluchtgedanken>, 1972~1979 / (오른쪽) 구본창, Ulanbator, Mongolia, 2012

 

우리에게 ‘독일 사진’은 ‘유형학적 사진’으로 규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드레 겔프케 작업은 전형적인 독일 사진이 아니다. 기록(document)을 토대로 하되, 정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느낌이다.

[ 안드레 겔프케 ]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독일 에센(Essen)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당시 교수였던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의 영향을 받았다. 1945년 나치가 패망한 뒤 독일은 새로운 사진을 모색했는데, 이때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오토 슈타이너트다. 그는 ‘신즉물주의 사진(알베르트 렝거파츠슈가 이끈 현대사진 운동. 대상의 구조와 형태를 건조하고, 무표정하게 재현)’의 맥을 잇는 ‘주관주의 사진(대상성에 충실하면서, 사진가의 주관을 표현)’을 주창한 인물이다. 내 작업의 특징은 객관적인 스타일로, 사람을 강렬하면서 개인적(독백)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등의 질문을 던진다. 다이안 아버스, 로버트 프랭크, 리 프리들랜더, 허버트 리스트의 영향도 받았다. 베를린과 에센 등에서 다큐멘터리와 주관적 사진이 유행하던 20세기 중반, 뒤셀도르프에는 베허 부부의 ‘유형학적 사진’이 있었다(물론, 유형학적 사진도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후 베허 부부를 사사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등이 등장하면서 ‘유형학적 사진’의 입지가 강화됐다. 이들은 사진 본연의 역할보다는, 미술계 ‘자본’에 집중했다.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서 미술관과 컬렉터에게 파는 것에 더 관심을 둔 것이다. 고가로 사진이 판매되는 것을 본 현대 독일 사진가들은 다큐멘터리와 주관적 사진 대신, ‘팔리는 아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 논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흥미롭게도 <파리 포토(Paris Photo)>에 참여한 ‘키켄(Kicken) 갤러리’가 내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제안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니까 스트레이트한 사진이 다시 조명 받는 것 같다.

 

[ 구본창 ] 1985년 귀국할 때만 해도 ‘유형학적 사진’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후 미술과 합쳐지면서 유명해졌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긴 오후의 미행>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서울의 낯선 풍경이 반향을 일으킬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사람들이 스트레이트한 사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에서 공개하게 됐다. 나의 시선을 재밌어하더라.

 

오히려 최근 작업인 <Incognito> 시리즈가 더 독일스럽다. 더 정갈하다고나 할까.

[ 구본창 ] <긴 오후의 미행>은 유학에서 돌아온 나의 혼란한 마음을 표현한 작업이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혼재된, 카오스적인 도시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반영됐다. 반면, <Incognito>는 30년 전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다. 더 이상 서울은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비가 극에 달하는 도시가 아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형적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인 풍경을 찍었다.

 

André Gelpke, <In Germany>, 1980~2010

구본창, LA 024 , ca.1988, <긴 오후의 미행>

 

한미사진미술관 영상에서 ‘사회에 대한 시선’을 언급했다. ‘사회에 대한 시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단어 자체로만 본다면 <긴 오후의 미행>이 ‘사회적(social)’이다.

[ 구본창 ] 유럽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그런지 많은 것이 답답했다. 예전에는 1980년대 독재정치, 빈부 차이 등에 몰두했다. 지금은 ‘더 넓은 시선에서의 삶’에 주목하려고 한다. ‘난민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같은. 인류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가 내 피부 세포 하나하나와 반응하는 느낌이다. <Incognito>는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표현한 사진은 아니다. 예를 들어, 깨진 와인병을 찍을 땐 전쟁에서 일어난 학살이 떠올랐고, 페루 리마에서 추기경 사진을 찍을 땐 가톨릭의 권력(남아메리카 성 학대 사례)이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겪은 인간사에 대한 것들이 어떤 상처나 오래된 흔적에 녹아든 것이 아닐까 싶다.

 

안드레 겔프케 작업 역시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공유한다.

[ 안드레 겔프케 ] 나에게 사회적인 것이란 ‘인간을 향한 관심’이다. 왜 노인이 길거리에서 구걸해야 하는지, 왜 노인은 요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는지 등이 궁금하다. 사회 시스템 탓일까, 아니면 젊었을 때 저지른 잘못 때문일까. 어쩌면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두려움에 관심이 많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선보인 작업에 대해서 ‘이질적이다, 사적이다, 모호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스트레이트 포토’에서 ‘메이킹 포토’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사진’ 하면 여전히 ‘유형학적 사진’부터 접근한다. 다양성으로 가는 듯하지만, 결국 유행 혹은 세력에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 구본창 ] 솔직히 나도 한국 사진을 잘 모르겠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사진가들이 사라진 것 같다. 다들 어디서 활동하고 있을까. 분명, 사진을 다루는 사람들은 늘어난 것 같은데, 사진가의 힘이 덜 느껴진다. 미술 관점에서 사진에 접근하는 사람은 많은데 말이다. 지금 와서 스트레이트 사진을 운운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사진을 통해 우리의 삶과 한국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가 누가 있나 싶다. 앞으로 우리나라 사진을 이끌어나갈 30~40대 사진가 중에서도 겨우 손꼽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스트레이트 사진을 추구했던 사진가들의 노력이 폄하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저 서바이벌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사진을 부흥시키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요즘 사진은 인스타그램 용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 안드레 겔프케 ] 서울뿐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서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 매장만 있지, 사진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지만, 사진 본연의 가치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990년대 초반의 구본창 & 1984년의 안드레 겔프케

박이현 기자  2021-02-23 태그 구본창, 안드레겔프케, 긴오후의미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