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포토 스토리

화양연화 _ 양승우
죽으려고 해도 결국엔 행복해지니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사진가 양승우의 이야기.

얼마 전 더레퍼런스(The Reference)가 기획한 사진가 양승우의 개인전 <기억하기 위해,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가 정읍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그가 마주해온 인생과 주변인들의 기록을 고향인 정읍에서 선보인 것이 양승우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향인 정읍에서 전시를 열게 된 소감은?
내가 사진가라는 것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뜻깊었다. 사진을 한다고 말만 들었지,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내가 진짜로 사진가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시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던 것처럼 보였다. 사진 속 인물 중에는 성공한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아직 정착하지 못한 친구들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네 사진집을 사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짠했다.

 

한국이 좁게 느껴져 일본에 갔다고 들었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들과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에 갔다. 거의 땅 끝까지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갈 곳이 없더라. 텔레비전에서 보면 미국은 몇 날 며칠을 달려도 길이 이어지던데, 그 순간 왠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은 체격에서 밀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택한 곳이 일본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본인이 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일본 출신인데, 아이들을 잘 챙겨줬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져서 거리낌 없이 일본을 선택한 것 같다.

 

 

 

일본에서의 삶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생활하다 보니 문화 차이가 제법 컸다. 길에 쓰레기가 별로 없었고, 사람들 복장도 자유로웠다. 가장 큰 충격은 ‘혼밥’이었다. 두 번째는 가부키초였다. 일본어학당 선생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말했던 그곳에 호기심을 안고 갔다. 길거리에서 흡연하고 싸우는 게 영락없이 서울 같았다. 가부키초에 있는 게임장, 술집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알면 알수록 그곳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비자 갱신을 위해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에 진학했다. 단순히 일본에서 오래 살려고 진학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사진에 빠져버렸다. 인생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숙자, 문신, 야쿠자 등 사회가 꺼리는 대상을 촬영하는 이유는?
사람 냄새가 나니까. 사진가로서 무엇을 찍고 싶냐고 묻는다면, ‘냄새’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찍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냄새가 있는 것을 찍으려고 한다. 노숙자, 야쿠자를 보면 왠지 나랑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날 것, 자유로움의 냄새랄까. 아르바이트가 아닌, 촬영을 위해 처음 가부키초에 갔을 땐 솔직히 무서웠다. 저 멀리서 오는 야쿠자 다섯 명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속된 말로 ‘쫄아서’ 말을 못 걸겠더라. 셔터를 못 누른 것이 너무 분했다. 다음 날 다시 가부키초에 갔다. 그런데 그들이 또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맞을 각오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예상과는 달리, 호탕하게 허락했다. 심지어 포즈까지 취해줬다. 며칠 뒤 사진을 현상해서 가져다주니, 그때부터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을 도와줬다. 무서운 것이 사라지니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보면, 마구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가부키초를 촬영한 사진으로 ‘도모켄 사진상’을 받았다. 사진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관하는 상이다. 이 사진상을 받으면 일본에서는 더는 받을 상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 졸업 후 ‘동경공예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도모켄 사진상’ 포스터를 봤다. 언제쯤 저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자그마치 16년이 걸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진계 사람 대부분이 거친 작업을 하는 나와 거리를 뒀다. 그런데 ‘도모켄 사진상’을 받으니까 예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더라. 갑자기 선생님이라 부르더니, 전에 없던 친절을 보여줬다. 내심 통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선 활발히 활동했지만, 한국에선 2016년 처음 전시를 열었다.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사진계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다들 하는 말이 “사진은 좋은데…”였다. 여러 공모전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러던 중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 관장이 전시를 제안했다. 물론, 처음엔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남진 관장의 용기 덕분에 고향인 정읍에서도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양승우 이름을 각인시킨 건 <청춘길일> 시리즈다. 주변 사람들의 흔적을 숨김없이 기록한 작업이다.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되레 자신에게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맞다. 모든 사진은 온전히 ‘나’다. 오래 전 친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친구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더라. 게다가 3개월 지나니까 친구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죽었을 때 사진 한 장 없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죽어도 친구들은 나를 잊고 재밌게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친구들이 찍은 것도 있고, 술집 접대부가 찍은 것도 있다. 테이블 위에 카메라를 놓고 아무나 셔터를 누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제작했다. 종이에 기록되면 영원히 잊히지 않을 테니까.

 

주변인들의 옛 사진과 현재 사진을 병치한 시리즈가 궁금하다. 모든 작업이 기록과 기억,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초등학교 동창을 3~40년 만에 만난 적이 있다. 분명 졸업 앨범사진과 많이 달라졌는데, 어렸을 때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그때부터 옛날 사진과 지금의 모습을 나란히 배치해보았다. 내가 간직하고 있던 기억과 실제 모습이 어떻게 매칭되는지 궁금해서다. 이후 작업 초점을 가족으로 옮겼다. 결국엔 죽고 사라지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그들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에서 산다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사진을 그만두고 싶어 술을 마시고 무작정 밤거리를 헤맨 적도 있다. 술만 취하면 그렇게 타임머신을 탄다. 하수구로 흘러가는 소변 줄기가 현재의 힘든 나와 과거의 나를 이어준다. 언제나 종착역은 친구들과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이다. 죽으려고 해도 결국엔 행복해지니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흑백사진 위주로 하다가 일본과 한국에서 촬영한 장난기 넘치는 사진은 죄다 컬러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필름과 인화지를 구매하는 것이 점점 힘든 반면, 디지털카메라 성능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컬러사진으로 넘어간 셈이다. 특별한 주제를 정하고 컬러사진을 찍진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거나 일하러 갈 때,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과 마주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누른다. 

 

작업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양승우에게 ‘작가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건물에 카펫을 깔기도 하고, 유전을 찾으러 말레이시아와 콩고 같은 나라에 간 적도 있다. 유전 발굴하는 회사 오너가 프랑스 사람인데, 갤러리도 운영한다. 프랑스에서 전시할 때 인연이 돼 가끔 내게 일거리를 제안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엔 패션사진 촬영 의뢰가 온 적도 있다. 거창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작가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의 이야기가 멈추면 작가의 삶이 끝난다고 믿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누가 봐도 ‘이것이 양승우 사진이다‘를 알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계속해서 냄새나는 사람만 찾아다닐 것이다. 현재 조선학교 복싱부와 가부키초의 50년 된 카바레를 찍고 있다. 그들의 삶에 이끌리는 것이 운명인 듯하다. 끝장을 볼 때까지 기록하려고 한다. 기회가 되면, 고향인 정읍에서도 작업을 진행하고 싶다.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산에 등재된 ‘무성서원’, 동학농민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감싸고 있는 냄새를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아! 중요한 걸 한 가지를 말하지 않았다. 5~6년 전부터 일본이 좁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박이현 기자  2019-09-10 태그 양승우, 청춘길일, 화양연화, 더레퍼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