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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전시

동강사진상 수상한 이정진


삶이 투영된 풍경

국내외의 30여 차례가 넘는 개인전,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진전문 출판사인 아퍼처에서의 사진집 출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한지 작가’라는 독창적인 작품세계의 구축 등. 이 모든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이정진(53)은 4년 전 돌연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를 떼어내듯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뉴욕 롱 아이슬란드의 작업실로 스며들었다. 변하려면 익숙한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만 남긴 채.
이정진에게는 ‘사진으로 시를 쓰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본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을 찍는 작가가 이정진이다. 작가의 감성이 겹쳐진 사진 속 풍경과 정물은 고독하다 못해 죽음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뒤 방치된 버스와 앙상한 골격만 남은 건물, 지평선과 맞닿을 만큼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그때 그곳에서 작가가 느꼈을 심경에 궁금증을 자아낸다. 초현실적인 풍경사진의 기묘함은 그녀의 정물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토기, 버려진 수저, 낡은 나무의자의 한귀퉁이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사소한 오브제의 외로움과 함께 특별한 질감과 분위기로 다가온다. 오랜 시간 다르게 보기를 시도한 작가의 노력과 어디서든 이방인이기를 원하는 작가 자신이 사진에 투영되었다. 이처럼 이정진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보다 왜소하고 틀어진 풍경에 마음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풍경은 숨을 쉬는 듯 결이 살아있고 특유의 미묘한 회색 톤을 낸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발견한 한지와의 만남 때문이다. 리퀴드 라이트(Liquid Light)라는 감광유제를 거친 가장자리를 가진 수제 한지에 붓으로 바르고 그 위에 사진을 인화한다. 프린트마다 다른 붓질과 한지 고유의 특성이 만나는 것이다. 이처럼 회화의 수공적인 노력과 은염사진의 기계적인 완성도를 모두 담아내는 이정진만의 독창적인 방식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된다.
그동안 이정진은 미국 사막의 끝없는 지평선을 담은 ‘Desert’와 ‘The American Desert’ 그리고 귀국해서 한국의 석탑을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게 표현한 ‘Pagodas’, 시골길에서 만난 풍경작업인 ‘On Road’, 훼손되어가는 석불을 촬영한 ‘Buddha’, 정물작업인 ‘Thing’, 2011년 아퍼처에서 사진집으로 출간된 ‘Wind’ 그리고 최근작인 ‘이스라엘 프로젝트’와 ‘숨’(Breath) 시리즈까지 쉼없이 작업을 발표해왔다. 오는 7월19일에 개막하는 12회 동강국제사진제에서 그녀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전시가 열린다. 지난 2월말, 12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이정진이 선정되면서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수상자 전시를 갖게 된 것이다. 동강사진상 심사위원회는 지속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 국제적인 활동성과 등을 들어 지난 20년간의 여정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이정진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정진은 지난 2010년부터 진행 중인 국제적인 사진 프로젝트인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중이다. ‘유대인의 삶’을 주제로 지난 30년간 40개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의 삶을 담아온 프랑스 사진가 프레드릭 브레너가 기획, 제안한 프로젝트이다. 프레드릭 브레너를 포함해 전세계 11명 사진가들은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이스라엘의 땅과 현실을 기록했고, 그 결과물은 올해 말부터 시작되는 전세계 순회전시와 사진집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컬러사진의 거장 스테판 쇼어(미국, 1947~), 독일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토마스 스트루스(독일, 1954~), 세계적인 다큐 작가 요제프 쿠델카(체코, 1938~), 라이트박스를 이용한 네오 픽토리얼 사진의 선두주자 제프 월(캐나다, 1946~), 매그넘 작가인 질 페레스(프랑스, 1946~), 사진계의 노장 로잘린 솔로몬(미국, 1930~) 등 생존하는 사진계의 거장을 망라한다. 여기에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정진이 포함됐다. 지지받거나 적대 당하는 그리고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2개의 패러다임 속에 놓인 이스라엘은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생전 처음 발디딘 이스라엘은 성스러움과 피흘려온 역사가 공존하면서 지금도 그 역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이정진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불안하고 뒤틀린 땅의 기운과 연관된 삶을 은유적으로 담았다. “어떤 이즘이나 증거의 현장이 된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삶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가 누릴 수는 있어도 정복할 수 없는 땅의 기운 같은 것이다. 도시와 땅의 풍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 살면서 누리고 고통 받고 부조리를 연출하는 삶에 비해 훨씬 조화롭고 여전히 신비를 머금고 있었다.” 종교적인 것과 삶의 부조리한 단면들 그리고 자연의 돌과 인간의 벽돌, 이 모든 상반된 조화가 그녀에게는 작업이 대상이었던 셈이다. 2010년 말부터 4차례 이스라엘을 다녀왔고, 현재는 뉴욕에서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이정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Unnamed Road 03, 2010(Israel Project)

Unnamed Road 11, 2011(Israel Project)

이스라엘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사진 부문 수석 큐레이터인 제프 로젠하임이 추천했다. 아마도 그전에 했던 사막, 풍경작업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 프로젝트는 이스라엘에 관한 타자의 다양한 시각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어서 매그넘 작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다큐 작업 경험이 전혀 없는 나를 비롯해 파인아트, 인물사진까지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정해진 기간, 다른 작가와의 공동 프로젝트 등 여러 면에서 기존 작업과는 달랐을 것 같다.
12명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촬영하지만 결국 같은 밥상에 올려진다는 부담감, 나보다 작업 이력이나 인지도에서 한참 앞선 작가들과 함께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사실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무엇을 찍고 어떻게 찍을지를 전적으로 내가 결정해오면서 내게는 작업의 결과 못지않게 동기가 중요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의뢰를 받아 하는 작업이며 이스라엘에 관해 그전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잘 모르는 땅을 이해하는 것부터 좋든 싫든 작업 결과물을 끌어내야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전 작업과 비슷한 맥락에서 작품이 읽히며, 슬픔이 깃든 것 같다.
우선 작업이 시작되면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하게 된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 이해, 소통할 수 있을지, 내 목소리는 어떻게 낼지 등등. 그렇게 해서 들여다본 이스라엘은 지옥과 같았다. 신이 부재중인 가운데 대립하는 듯한 땅에서 나는 어느 편도 들지는 못하지만 결국은 약자 편에 설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땅에 더 끌렸고, 유대인보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작업을 풀어가게 되었다.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결국 내가 느낀 것을 찍는 것이지 내가 본 것을 찍는 것은 아니었다. 촬영한 사진을 고를 때 분노하면서 찍은 직접적인 사진보다 내가 옳고 그름을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사진, 마음으로 읽혀지는 사진 그래서 우리 삶이 투영되어 해석되는 그런 사진을 셀렉트하게 되더라. 이런 면에서 이전 작업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Breath 01, 2010

Breath 07, 2012
‘Breath’(숨)는 2010년 포트레이트 작업에서 좀더 개념이 확장된 몸에 대한 이정진의 최근작이다. 몸을 통해서 표현되는 마음의 파장을 해석하며, 우리가 ‘숨’에서 연상할 수 있는 생명의 편린들을 이미지화 하는 작업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촬영 제한은 없었는가?
이스라엘에서 작업할 때는 현지 어시스턴트나 각종 지원을 받지만 팔레인스타인 땅에서는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작가가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점 외에는 차이가 없다. 촬영에 앞서 2주 정도 현지답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 종교, 문화, 인류학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이 참여작가들과 대동하며 해설과 현장답사 등을 제공하는데, 이때 많은 작가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12명 참여작가들이 작업 중간에 각자의 결과물을 중간 프레젠테이션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절반 정도가 팔레스타인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 놀랐던 기억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프로젝트라는 명칭이 정확하지는 않은 셈이다.

작가로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
12명 중에서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고, 나이도 어린 축에 속했다.(웃음) 당연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작가도 비슷했다는 점이다. 워낙 쟁쟁한 작가들을 모아놓은 전례 없는 프로젝트여서인지 서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83세의 로잘린 솔로몬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핫셀블라드로 포커스를 맞춰 촬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또 사진을 시작할 때 많이 배우고 동경했던 쿠델카과 함께 하다니 꿈만 같았다.(웃음) 감동적인 만남들이었고 많이 배웠다.

뉴욕으로 옮긴 지 4년째다. 정착할 계획인가?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뉴욕으로 왔고, 조금씩 살아가는 여건을 만드는 중이다. 현재로선 뉴욕에 완전히 정착할 가능성이 85퍼센트 정도 된다.(웃음) 사람마다 편한 장소가 있는 것 같고, 내게는 뉴욕이 그런 곳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자유로움이다. 친구와 가족이 있는 한국은 살며 교류하기에 익숙한 곳인 것은 맞지만 나를 그대로 놔두는 공간, 혼자 있는 공간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내가 변하려면 익숙한 것을 놓아야 한다. 개인전 30회, 한지 작가라는 타이틀은 지금껏 했던 것을 계속하게 하지, 새로운 나를 만들게는 못하는 것 같다./글 이종화기자<월간사진 2013년 4월호>

월간사진 기자  2013-05-2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