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왜 울지도 웃지도 않는가?
바바라 쿠르거(Barbara Kruger)로부터
심상용(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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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속 경제성장으로 경제 기적을 이룬 나라로 발돋음했다. 전후 미국의 가장 저항적인 현대미술가들 가운데 한 명인 바바라 쿠르거는 그 기적의 주역인 한국인들이 이제까지의 것들보다 결코 더 쉽지 않을, 비경제 영역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2019년 서울에서 쿠르거의 초대전 《바버라 크루거: 포에버(FOREVER)》가 열렸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1980년대 전위의 진두에 나섰던 저항 미술가,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같은 선언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1989)는 미술관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1989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대법원 판결(1973)을 뒤집는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시위들, 특히 ‘재생산의 자유(reproductive freedom)’를 지지하는 워싱턴 여성 행진을 위한 포스터로서 제작되었다.
‘재생산의 자유’ 측면에서라면, 그녀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초 저출산률을 기록 중인 나라에서 열렸다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듯싶다. 하지만 여성성에 대한 현대사회의 야만적인 인식에 대한 저항인 〈우리는 당신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In We Will Not Become What We Mean to You)〉(1987) 같은 작품은 어떤가. 여기서 여성의 이미지는 립스틱으로 강조된 미소와 목에 두른 윤기 있는 천의 주름으로 함축된다. 그녀가 특정한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익명성으로서의 뷰티(beauty), 마치 고대 그리스 조각 감상법처럼. 쿠르거의 메시지는 이렇듯 명료하다. 오직 순응이 강요될 뿐인, 왜곡된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한 도발이자 도발의 촉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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