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RT

북&컬처

참신하거나 흥미롭거나
사진책방 대표, 월간사진 에디터 등 사진집 애호가 5인이 선택한 개성 강한 사진집 다섯 권을 소개한다.

참신한 기획과 구성으로 탄생한 사진집을 통해 누군가의 취향을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된 한 사람
최은아 X 유현선 <Untitled Mirror>

이 사진집 속 인물들은 모델이나 배우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작가의 친구들이다. 그래서일까. 일상의 자연스러움과 카메라 앞에서의 연출된 포즈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 사진집의 가장 큰 매력은 표지다. 인물의 형상이 보이는 것 같지만 거리를 두고 봐야만 인물이란 걸 알 수 있다. 처음엔 시각적 강렬함에 이끌려 사진집을 집어 들었다. 팝아트 스타일의 ‘실크스크린’을 떠오르게 하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다(마치 포토샵에서 Threshold를 적용한 듯하다). 페이지 번호를 거울에 비춘 것처럼 제작한 것도 흥미롭다. 책의 중간에 삽입된 페이지는 종이의 재질도 다르다. 모델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 실크스크린이 등장하는 사진도 인상적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사진을 통해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없는 사진들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작업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겠다. 대표작(?)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텍스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모호한 설명이 많다는 점이다. 박이현 | 월간사진 에디터

 

 

 

 

 

 

 


겹겹이 쌓인 기억의 해체
김선영 <Schema>

좋은 사진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협업이 중요하다. 사진집을 통해 작품이 지닌 매력과 작업 이야기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집은 내용물을 펼쳐보기 전 외형만으로도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진집이 아니라 마치 직사각형 필통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겹겹이 쌓인 블록을 해체하며 봐야 하는 점도 독특하다. <스키마(Schema)>는 나무 블록을 활용해 기억의 왜곡과 과장, 재구성과 소멸 등을 여러겹으로 표현했다. 각각의 사진에 싸여 있는 블록은 머릿속 어딘가 저장되어 있을 법한 기억의 조각을 나타낸다. 이미지는 블록의 면과 모서리에 따라 특정 부분이 강조되기도 하고 굴절되기도 하는데, 이는 지극히 사람의 주관적 기억과 닮아 있다. 기억은 각자의 기질과 경험에 따라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쉽게 왜곡되거나 변형된다. 따라서 기억의 블록은, 수평 혹은 수직으로 자유롭게 여러 기억들과 서로 맞물리며 쌓이거나 해체된다. 블록 하나가 단독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여러 개가 함께 존재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되는 기억의 모습을 표현했다. 입체 형태의 사진작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진집 또한 입체로 제작한 것이 인상적이다. 수오 | 사진가

 

 

 

 

 

 

 

 

모험가들의 판타스틱 교과서
얀 그로스(Yann Gross) <THE JUNGLE BOOK>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는 아마존의 현재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사진집이다. 아마존에 서식하는 동식물들, 토착민의 현재 문화, 외부인에 의해 변화된 모습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사진집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녹색 하드커버에 금박처리 된 타이틀과 일러스트가 고전 명작인 <정글북(The Jungle Book, 1894)>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고전에서 느껴졌던 애틋하고 순수한 감정은 이내 사라진다. 이 사진집은 정글의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과장도 미화도 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하게 시각을 자극한다. 이러한 구성 특성상, 모글리(인간이지만 늑대 무리에서 자라나는 고전 주인공)를 사진집에 투영해보게 된다. 서사를 유영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책에 아마존 지도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다. 주요 지명과 각 위치에 대한 특징이 그려져 있다. 사진 캡션에 포함된 촬영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재미있게 사진집을 유영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가 고전 명작 ‘정글북’을 의식하고 작품을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시선이 조금 더 개입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THE JUNGLE BOOK>은 이것과 관련한 어떠한 메타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찬석 | 월간사진 에디터

 

 

 

 

 

 

 

 

 

 

 

얼굴 없는 인물 사진집
마린 바스(Marijn Bax) <Mar>

78년을 한집에서 살다 102살에 돌아가신 네덜란드 할머니 마(Mar)의 마지막 10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사진집이다. 우선 디자인 측면에서는 제본도 페이지 표기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접힌 페이지를 꺼내 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페이지 순서가 뒤죽박죽된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사진집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이미지의 패치워크(여러 가지 색상, 무늬, 소재, 크기, 모양의 작은 천 조각을 서로 꿰매 붙이는 것을 말한다) 같은 책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인물에 관한 사진집이지만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굴을 배제하고 오히려 중간 중간 집안에서의 할머니 움직임이 담긴 사진을 한 페이지에 여러 장 배치함으로써 미묘한 일상성을 느끼게 한다. 이 사진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페이지는 왼쪽에는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의 모습이(물론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오래된 의자와 카펫이 나오는 부분이다. 할머니는 오래된 보랏빛 치마를 입고 있다. 그리고 이 페이지 뒷면에 그 치마의 이미지가 가득 펼쳐진다. 치마는 짐작컨대 실물 사이즈와 거의 흡사한 크기로 담긴 듯하다. 이 때문에 사진집을 보는 이는 자연스레 치마에 담긴 세월의 흔적 (기운 흔적, 담배 자국)을 느낄 수 있다.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소소한 존재들의 향연
전지 <채집카드>

만화 및 다양한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 전지가 만든 카드집 형태의 독특한 사진집이다. 전지는 급격하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철거 직전의 건물이나 모르타르 벽면의 주택양식 등 허름하거나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을 채집하듯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채집카드>라는 이름처럼 카드게임에 쓰이는 카드들과 흡사한 형식으로 만들었다. 열어서 내용물을 펼치면 28장의 사진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카드로 채집된 사진의 뒷면에는 작가의 글이 있다. 카드라는 형식 덕분에 별것 아닌, 심지어 흉물스럽게 느껴졌던 존재들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보통 이런 다큐멘터리 형태의 사진들은 어두운 주제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 달리 채집카드는 작가만의 독특한 의도와 구성 덕분에 사소하고 볼품 없는 피사체들이 개성있는 존재로 보여진다. 사진집의 포장 디자인 역시 매력적이다. 검은색 컬러에 그래픽디자인을 잘 융화시켜 귀여운 느낌을 강조했다. 김영주 | 월간사진 에디터

김영주 기자  2021-08-19 태그 포토북, 사진책, 에디터, 수오, 이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