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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사진은 별책부록?
우리에겐 ‘화가’로 알려졌지만, 유독 ‘사진’을 사랑했던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우리에겐 ‘화가’로 알려졌지만, 유독 ‘사진’을 사랑했던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르네 마그리트, 데이비드 호크니, 그리고 데이비드 워나로비치까지. 사진을 작품 창작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사진을 통해 우리가 보는 방식을 탐구하며, 그리고 투쟁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들 3인의 화가에게 있어 사진은 결코 작업의 별책부록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와 야만인, 런던 갤러리, 런던, 1938

 

초현실주의 화가의 현실주의 사진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화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르네 마그리트가 ‘사진 마니아’였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셀프 포트레이트는 물론 아내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회화 속 장면과 똑같이 연출한 사진 등 르네 마그리트가 촬영한 약 130여 점이 국내 전시를 통해 전격 공개됐다. 지난 4월 2일 뮤지엄 그라운드에서 시작된 <Rene Magritte, The Revealing Image : Photos and Films>은 그동안 익히 봐왔던 회화작품이 아닌,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르네 마그리트의 사적인(!) 사진과 영상(그가 직접 촬영해 만든 영화)을 선보인다. 그것을 통해 마그리트의 또 다른 예술적 면모와 그의 개인적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전시는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사진과 마그리트의 내적 관계를 테마로 해서 구성된다. 첫 섹션에서는 1900년대 초반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 예술 활동을 하며 만났던 지인들과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작고 흐릿한 흑백 빈티지 프린트들이 액자에 담겨 마치 그의 앨범을 엿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의상과 당시 분위기, 행복한 일상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르네 마그리트는 화가이지만, 생전에 자신의 아틀리에를 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 마치 ‘놀이’를 하듯 거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그 장면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림을 그리기 전 지인에게 포즈를 취하게 해서 그 장면을 촬영했는데, 여기서 마그리트가 생각했던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사진을 적극적으로 심지어 명민하게 작업으로 연결하고 활용한 것이다. 연출된 사진과 그 사진을 바탕으로 완성된 회화작품이 전시장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그 둘을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표작 중 하나인 <통찰력(Clairvoyance)>을 실제로 그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사진이 그 예다.

 

마그리트는 초상사진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셀프포트레이트는 물론, 아내이자 뮤즈인 조제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그중에는 평소 그의 장난기를 반영하듯 깜짝 놀라는 표정도 있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도 있는데, 눈을 감게 해서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인물을 100%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외에도 그가 직접 촬영해서 만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미디어룸에서는 그의 초현실주의 기법인 데페이즈망(하늘에서 남자가 비처럼 내린다든지, 즉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위치시키는)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 그라운드에서 7월 10일까지 열리며, 이어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10월 31일까지 순회전 형식으로 진행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전경

 

화가가 완성한 포토콜라주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작업에 적용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당시 호크니는 폴라로이드와 사진 혼합 연구를 시작했고, 펜탁스 110 카메라로 첫 번째 폴라로이드 콜라주 작업을 완성했다. 그가 포토콜라주에 매진한 건 우리의 보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다시, 그림이다>에 수록된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원근법이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경험상 두세 장의 사진을 함께 놓고 보면 원근법은 바뀔 수 있다. 이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작품은 <1983년 2월 교토 료안지 사원의 젠 가든을 걸으며>다. 주위를 빙 돌면서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 작품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서구의 원근법이 제거된 사진을 만들었다고 느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후 호크니가 반(反) 사진주의자가 됐다는 것. 그에게 사진은 본질상 찰나의 시간과 하나의 시선만을 가진, 한계를 지닌 것이 되었다. 또한, 그는 “콜라주 자체는 드로잉의 한 형식”이라고 할 만큼 사진을 회화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이와 더불어 세상이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진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포토콜라주는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듯, 호크니는 60여 년 동안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동성애, 인물, 풍경 등을 주제로 여러 매체를 이용해 다양한 표현 양식을 과감하게 시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시절 주목받은 작품과 1960~70년대 LA에서 완성한 작품,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중국 두루마리 회화의 영향을 받은 다시점 구도의 작품 등 133점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본격적으로 원근법을 실험한 1980년대의 <움직이는 초점> 시리즈, 그리고 3천 장의 사진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어 붙여 제작한 하나의 사진 드로잉 작품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등이 사진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전시는 8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Untitled (Culture Mask I), 1990, Fotografie / photograph, Courtesy of the Estate of David Wojnarowicz und / and P·P·O·W Gallery, New York

 

투쟁의 예술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1980년대 미국은 ‘격동의 시대’였다. 석유파동과 냉전을 겪었던 1970년대와는 달리 급속도로 살림살이가 나아졌기 때문이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이 모멘텀이 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기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들어선 신자유주의 정권 덕분(?)에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화려했던 왕년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2016년 미국인들은 레이건의 슬로건을 재사용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좋아졌다고 해서 모든 국민의 삶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뉴욕 이스트빌리지는 무분별한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슬럼화된 이곳에 하나둘씩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텅 빈 거리에서 예술가들은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논하며, 그들이 마주한 현실을 비판했다.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역시 그런 예술가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는 화가이자 사진가, 영화제작자, 에이즈 인권활동가, 퍼포머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낸 골딘, 키키 스미스 등과의 협업은 그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워나로비치는 다양한 미디어를 작업에 이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도 그중 하나다. 가면 쓴 남자의 모습을 오래된 35mm 카메라로 찍은 흑백사진이 대표적이다. 이는 성 소수자였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길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작업이다. 그의 전 애인이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진가 피터 후자르(Peter Hujar)를 찍은 사진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를 계기로 워나로비치의 작업이 정치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외된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데이비드 워나로비치의 사진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 <Photography & Film 1978-1992>가 5월 9일까지 독일 베를린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에서 진행되었다. 개인적·정치적으로 불완전한 시기에 촬영한 사진을 비롯해, 테스트 프린트, 실크스크린, 영화 등 150여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치열했던 워나로비치 개인적 삶과 대의를 위해 투쟁했던 그의 사회적 삶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박이현 기자  2019-06-12 태그 마그리트, 호크니, 워나로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