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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순수성을 향한 탐미 _ 말린 그리피스
그의 작업은 현대사회 속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무슨 의미를 내포한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말린 그리피스의 사진이다. 마치 동화 속 요정처럼 표현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The Vision, Nooks (2018), Archival pigment prints, 50x50 cm, edition of 3 + 2 AP.



The Botanical Garden #02, Nooks (2018), Archival pigment prints, 50x50 cm, edition of 3 + 2 AP.


빨강과 초록의 하모니
말린 그리피스(Malin Griffiths)는 5년 남짓한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북유럽에서 현재 주목받는 사진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40대 초반에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스웨덴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현상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는다. 중견 같은 신인인 그는 스웨덴의 특징이 묻어난 작업으로 스톡홀름 사진미술관이 주최한 <FotografiskaTalent 2018> 전시의 참여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 <Nooks>에서는 아름다움과 기묘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청량하고 아름다운 초록색 숲 사이로 보이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얼굴에는 왜 붉은색을 칠한 것일까. 이 작업은 현대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 안쓰러운 감정의 대상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근래 많은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 놀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어른들이 만든 영상, 휴대기기 등의 디지털 매체가 자연, 동물, 친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현실과 반대되는 다른 세계를 창조했다. 다분히 정상적이어야 하지만 상당히 낯선 모습의 세계 말이다. 그 세계가 바로 ‘Nooks’다. ‘작고 안락한 은신처’를 뜻하는 ‘눅스’는 작가가 창조한 세계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동화나 전설의 주인공처럼 묘사되어 있다. 언뜻 야생의 초목을 본능적으로 탐험하는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인상을 자아내는 요소는 작가가 기호학적으로 삽입한 붉은색이다. 이는 열정, 두려움, 용기, 피 같은 청춘과 성장을 상징한다. 인생의 많은 시기 중 무엇이든 가장 민감하고 강하게 반응하는 어린 아이들의 시간과 감정을 붉은색이나 꽃, 그리고 식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알더라도 작품 속 붉은 얼굴은 색이 가진 본연의 기묘함이나 인상 때문인지 초록의 숲과 대비되면서 일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충되는 두 색의 이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순수성’이다. 생에 있어서 가장 약하지만 순수한 시기와 그 감정을 대변하는 붉은색, 그리고 문명에 닿지 않은 숲을 상징하는 초록색. 이 두 가지 색이 대조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Nooks’ 세계를 효과적으로 상징한다.


The Dream, Nooks (2018), Archival pigment prints, 50x70cm, edition of 3 + 2 AP.



Resting Act 1, Nooks (2018), Archival pigment prints,50x50 cm, edition of 3 + 2 AP.



창조의 물감이 되다
작가는 전작에서도 아이들을 등장시켰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작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사실 작가의 아들, 딸 혹은 그의 친구들이다. 이들에게 사실상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이전 시리즈<Woods> 역시 비슷한 맥락의 작업이다. 어른 얼굴 모양의 마스크를 아이들에게 씌워 어른과 아이 사이에 관계성의 의미를 담아 숲에서 촬영한 작업이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일관되게 아이, 자연 등 순수한 존재에 대한 깊은 사고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 환경역시 영감의 원천이다. 작가는 스웨덴 서부에 살면서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실제로 촬영이 이루어진 곳 역시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가득한 스웨덴 국립공원의 숲이다. 더불어 날씨도 빼놓을 수 없는 창조의 원천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하늘은 1년 내내 검고 어두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여름 몇 주 동안만 해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침울한 날씨의 대조는 작가가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데 영향을 준다.날씨는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일까. 스웨덴은 인간관계는 다소 건조하고 단절돼 있다. 작가가 만든 ‘Nooks’라는 공간은 그런 안타까움이 반영된 상상의 세계다. 그녀의 차기 작업은 정체성, 이민, 자연, 식민주의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The Botanical Garden #01, Nooks (2018), Archival pigment prints, 50x50cm, edition of 3 + 2 AP.

김영주 기자  2021-05-24 태그 말린그리피스, 스웨덴, 사진가, 자연,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