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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김수강의 ‘검 프린트’
김수강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에 주목한다. 간결한 구성은 물론, 회화를 연상케 하는 색감이 상인적이다.

김수강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에 주목한다. 간결한 구성은 물론, 회화를 연상케 하는 색감이 상인적이다. 이는 사진과 판화, 회화의 속성을 고루 갖춘 ‘검 프린트’ 기법에서 기인한다. ‘검 프린트’는 ‘사진 장르의 단색화’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 장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Strawberry

Hanrabong

 

김수강의 작업은 묘한 매력이 있다. 흔하디흔한 일상의 피사체를 촬영했는데,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박영택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대상의 진실이나 사실성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특정한 미감이나 주제를 재현하거나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마음 한 편이 모로 쏠리면서 사물과 독대하게 하고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김수강은 그릇, 보자기, 소품, 수건 등을 조용히 응시하고, 이를 촬영하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숭고한 순간’을 표현해왔다. 얼마 전 그녀는 신작 <Fruits and Grains>를 발표했다. 수건을 담아냈던 <Towels> 이후 5년 만이다. <Fruits and Grains>는 딸이면서 동시에 아내이자 엄마로서, 그릇에 담긴 열매와 곡식들에서 발견한 근원적인 생(生)의 감각을 표현한 작업이다. 그릇 가득히 담긴 포도, 블랙베리, 감과 체리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며, 동시에 우리의 건강과 안부를 확인시켜준다.


김수강 작업의 핵심은 ‘검 프린트(Gum Bichromate Print)’다. 뉴욕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검 프린트를 진행해왔다. 1855년 알퐁스 프와트뱅(Alphonse Poitevin)이 발명한 ‘검 프린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의 주된 기법이다. 자외선과 만난 중크롬산염 Bichromate(중크롬산암모늄, 중크롬산칼륨, 중크롬산나트륨)가 콜로이드(아라비아 고무액)를 굳히는 원리에 기반을 둔 프린트 기법으로, 특정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동시에 이미지에 판화적인 조형성을 부여한다. 여기에 수용성 물감을 더하면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인화할 수 있으며, 다른 색을 넣은 유제로 인화를 반복할 경우 밀도와 색감을 높일 수 있다.

 

김수강 그릇, 보자기, 소품, 수건 등을 조용히 응시하고, 이를 촬영하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사물에 내재하는 ‘숭고한 순간’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뉴욕 Pratt Institute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검 프린트’ 기법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sookangkim.com

 

하이라이트부터 섀도까지 풍부한 톤을 가질 수 있도록 촬영한다. 직사광을 지양한다.

원본을 포토샵에서 열고, ‘그레이스케일’로 전환한 다음 ‘반전(Invert)’을 클릭한다.

수정이 끝난 JPEG 파일을 출력소에 보내면, 필름 준비는 끝.

 

#1 촬영 관건은 ‘톤’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과일)의 톤’이다. 하이라이트부터 섀도까지 풍부한 톤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직사광(인공조명 이용)을 지양하는 편이다. 강한 콘트라스트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촬영 장면만 보면 누구나 찍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데, 모니터에 띄운 사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무채색 배경과 그릇 위에 놓인 총천연색 과일이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촬영을 마치면, ‘검 프린트’에 사용할 필름을 만든다. 여러 장의 분판 필름을 제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김수강은 한 장의 필름을 사용한다. 그러기 위해 원본을 포토샵에서 열고, ‘그레이스케일’로 전환한 다음 ‘반전(Invert)’을 클릭한다. 또한, 커브와 레벨 등을 이용해 톤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반사와 먼지도 제거한다. 수정이 끝난 JPEG 파일을 출력소에 보내면 필름이 완성된다. ‘검 프린트’ 작업의 출발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검 프린트’ 준비물로는 콜로이드(아라비아 고무액)와 중크롬산염 Bichromate(전세계적으로 중크롬산암모늄을 많이 사용), 수용성 물감, 붓 등이 있다.

 

아라비아 고무액과 중크롬산암모늄은 보통 1:1 비율로 배합한다.

물에 살짝 적신 스펀지 붓으로 되도록 빠르고 고르게 유제를 바른다.

드라이기로 종이를 건조하면, 암실작업에서의 ‘인화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2 ‘검 프린트’ 위한 약품 배합

‘검 프린트’ 종이는 약간의 질감이 있어 유제를 지탱할 수 있고, 장시간의 현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한다. 이 조건에 들어맞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Rives BFK’이다. 이 종이는 앞쪽(울퉁불퉁함)과 뒤쪽(부드러움) 질감이 각기 다른데, 김수강은 부드러운 뒤쪽 면을 이용한다. 발색 차이가 없어, 작업과 어울리는 질감을 선택한 것이다. 아라비아 고무액과 중크롬산암모늄은 보통 1 : 1 비율로 배합한다. 아라비아 고무액의 비율이 높으면 빛에 덜 민감하게 반응해 중간 톤이 많이 사라지고, 중크롬산암모늄 비율이 높으면 노광 과다의 위험이 있다. 수용성 물감 비율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프린트에 맞는 적당한 양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점은 아라비아 고무액과 물감을 섞은 다음 중크롬산암모늄을 넣어야 한다는 것. 물감이 오래되면 덩어리가 생기는데, 이는 현상·인화 과정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물감을 저어서 완벽하게 풀어야만 한다. 중크롬산암모늄은 주황색을 띠는데, 노광 시아라비아 고무액을 굳힌 다음 현상 과정에서 이 색조가 빠져나가므로 프린트 색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건조한 종이 위에 필름을 올린 다음 마스킹테이프로 고정한다. 이를 감광기에 넣어 빛에 노출한다.

먼저, 중크롬산암모늄이 빠진고,이후 빛을 덜 받은 부분의 아라비아 고무액이 물감과 함께 나온다.

프린트 위로 직접 물을 뿌리면 현상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단, 질감이 거칠어질 수 있다.

 

#3 종이 위에 이미지를 얹다

‘물감+아라비아 고무액+중크롬산암모늄’을 종이 위에 바를 차례다. 이때 물에 살짝 적신 스펀지 붓이 필요하다. 스펀지 붓이 너무 건조하면 유제를 전부 흡수하기 때문이다. 되도록 빠르고 고르게 유제를 바른다. 이때 너무 힘을 주면 종이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이후 드라이기로 종이를 건조시키면, 암실작업에서의 ‘인화지’가 완성된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빛이 있으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되도록 불을 끈 상태에서 건조시키는 것이 좋다. 사실 검 프린트는 감도가 낮아 빛에 민감하지 않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빛에 노출하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잘 건조시킨 종이 위에 필름을 올린 다음 마스킹테이프로 고정한다. 이때 네 모서리 위치를 연필로 체크한다. 2도 이상의 인화 때 핀을 맞추기 위함이다. 필름을 고정한 종이를 감광기에 넣어 빛에 노출한다. 노광 시간은 보통 1~4분이 적당하다. 흐린 색 물감을 사용한 경우 노광 후에 고스트 이미지가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물에 들어가면 없어진다. 노광이 끝나면, 모서리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감광기 안에서 종이가 쫙 펴지면, 필름 위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색을 입히고 싶다면, 물감 색을 바꿔 지금까지의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위의 과정을 일곱 번(7도) 반복했다. 딸기 이미지에 빨간색이 점점 입혀지는 모습이다.

열네 번(14도) 반복한 결과물이다. 딸기의 빨간색과 배경색이 디지털 원본에 가까워졌다.

 

#4 다른 색을 입히고 싶다면 반복 또 반복

실온의 물에 노광이 끝난 종이를 이미지가 위로 오도록 담근 다음, 다시 이미지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뒤집는다. 현상 초반 1~2분 동안 중크롬산암모늄이 빠지고, 이후 빛을 덜 받은 부분의 아라비아 고무액이 물감과 함께 나오면서 이미지를 만든다. 현상 초반에는 물을 자주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상을 빠르게 진행하고 싶다면, 물의 온도를 높이거나 호스 끝의 압력을 조절해 프린트 위로 직접 물을 뿌리면 된다. 단, 질감이 거칠어질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고운 질감의 사진을 얻는 방법은 종이를 가만히 실온의 물에 넣어두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집게로 프린트를 집어 줄에 걸어 건조시킨다. 수평으로 뉘어서 말리면, 남아 있는 물이 한 곳에 모여 그 부분만 현상이 더 진행될 수 있다.


만약 다른 색감을 입히고 싶다면, 물감 색을 바꿔 지금까지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부분적으로 색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딸기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빨간 물감을 섞은 유제를 이용해 노광을 준 다음, 현상 과정에서 딸기 주변을 붓으로 지우면 딸기에만 빨간색이 남는다. 검 프린트에서 ‘색의 정착’은 건조 과정에서 일어난다.

박이현 기자  2021-05-24 태그 김수강, 검프린트, 단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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