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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미니멀리즘과 사진 _ 이필
스트레이트 포토부터 포스트 포토그래피까지, 사진 속에서 미니멀리즘은 어떻게 발현되어 왔을까.

단순성과 정면성을 대표하는 베허 부부의 <Industrial Facades>(1972–1995) ⓒ Bruce Silverstein Gallery


‘특수한 사물’에서 ‘특수한 사진’으로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라는 개념은 입체 작업의 3차원성을 전제로 하기에 언제나 평면일 수밖에 없는 사진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1989년 쟝 프랑수아 슈브리예(Jean-François Chevrier)와 제임스 링우드 (James Lingwood)는 도널드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 개념을  사진에 적용하여 ‘특수한 사진(specific pictures)’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들은 <또 다른 객관성(Another Objectivity)>이라는 전시를 기획하여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해나 콜린스(Hannah Collins)등의 커다란 크기의 사진이 오브제이자 동시에 이미지(object-image)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명백히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를 차용한 ‘특수한 사진(specific pictures)’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객관성(objectivity)을 이미지 자체이자 물질적 생산품으로서의 이미지, 즉 오브제-이미지라는 개념으로 변환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작가들의 커다란 크기의 사진은 사물적인 요소와 조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치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가 시간과 공간속에서 관객의 경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반 오브제와 구별되듯이, ‘특수한 사진’은 객관성을 담보한 실제 이미지 위에 조형적 요소, 즉 허구(fiction)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사진은 특수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내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진이 대상(object)이자 이미지(image)로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진의 커다란 스케일과 함께 표현된 사물의 객관성이 미니멀리즘 운동에서 저드가 말한 특수한 오브제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역시 특수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객관성’에서 ‘또 다른 객관성’으로
이상에서 주목할 점은 사진에 있어서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하는 점이다. 사진의 탄생과 함께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사진의 객관성은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없는 아킬레스 건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대로 스트레이트 포토에서는 사진이 본성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즉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성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특수한 사진으로서 진정 사진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슈브리예와 링우드는 사진의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또 다른(another)’을 붙임으로써 사진이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다. 그들의 ‘특수한 사진’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객관성을 기반으로 하되, 그 객관적 이미지가 사물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조형적 이미지로 향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오브제이자 이미지이기도 한 ‘특수한 사진’은 웨스톤의 작품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사진의 평면적 추상성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이 제3의 객관성(another objectivity)은 모더니즘의 형식적 환원주의를 거부하고, 시각적인 것의 복합성, 경험의 우연성, 그리고 허구의 가능성을 가지는 사진 이미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진의 객관성 위에 재현(representation)의 예술성을 덧입힌 것이다. 


사진의 ‘또 다른 객관성’은 물질성 확보로 가능해졌다. 1980년대 들어 프린트가 더욱 커지고 색채가 선명해짐으로써 사진은 전례 없는 물질성을 얻게 되었다. 미니멀리즘 운동에서 작품의 인간 신체에 상응하는 물질성이 중요하듯이, 사진도 인간신체에 상응하는 크기의 물질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프린트 기술은 한층 발달하여 크기와 색채의 구사가 더 자유롭게 되면서 사진은 감상자와 작품 간의 현상학적 대면성(confrontality)을 얻게 된다. 슈브리예는 이제 사진이 “벽을 필요로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대면의 경험을 요구한다”고 함으로써 사진이 물질성을 획득함에 따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대면성이 사진에서도 가능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관객과 사진 이미지와의 관계성이 사진의 감상에 부각되고, 프리드는 슈브리예의 논의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프리드는 프린트의 크기가 커지면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사진의 디스플레이 방식이 변했음을 강조하면서 사진과 관람자의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 
 


현대 사진에서 미니멀리즘의 미학: 베허, 루셰, 발츠의 무표정 사진
현대 사진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미학은 단순성과 정면성(frontality)이다. 현대 사진의 단순성과 정면성의 미학의 우세는 독일의 베허 부부의 무표정한(deadpan) 건축물 사진이 주도했다. 베허 부부는 1970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기술적 건축구조물 비교(Vergleich Technisher Konstruktionen)> 전을 열었다. 전시는 피셔 갤러리의 개념미술 시리즈 전시 중 일부로 기획되었는데, 이 전시를 통해 미국 갤러리스트들이 베허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0년대 초에 들어 베허 부부의 사진은 국제 미술시장에 유입되었고, 자신들의 고유한 사진제작으로 북아메리카의 산업지역에서 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일명 ‘무표정’ 혹은 ‘표현이 결여된’(deadpan) 사진을 제작함으로써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표현으로 대상의 ‘익명성(anonymity)’을 부각시켰는데 이러한 사진제작 방법론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수했으며 그 영향이 토마스 스트루스,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안드레아스 그루스키(Andreas Gursky)등의 사진에 나타난다. 개념미술의 맥락에 자리하게 된 베허의 북아메리카로의 진출은 이후 현대 미술에 있어서 사진의 우세를 주도하였다. 1990년 미국에서 열린 <베허의 영향(The Becher Influence: Bechers, Gursky, Hütte, Ruff, Struth)>전 등 많은 전시들이 베허의 영향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전시는 뒤셀도르프학파의 작업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일명 베허 스쿨로 불리는 이들의 작업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특히 다큐멘터리, 건축적 구조, 유형학적 사진의 세계적인 유행을 주도해 왔다. 


베허 부부는 “우리와 유사한 작업을 한 유일한 작가는 캘리포니아에서 주차장을 찍은 에드 루셰(Ed Ruscha)다”라고 강조한다. 사진을 주로 이용하는 개념미술작가 루셰는 이미 1963년 무표정 사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1963년 <26개의 주유소>를 제작한 이래, 1967년 <36개의 주차 구역> 사진집을 발표했다. 베허부부는 이 주차장 사진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와 같은 길을 향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베허와 루셰 작품에 나타난 미니멀리즘의 단순성의 미학과 개념미술의 무표정성은 1970년대와 80년대 루이스 발츠(Louis Baltz)의 작품에 나타난다. 발츠는 규격화된 주택, 창고나 건축파편과 같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도시화의 단편을 무표정과 정면성의 미학을 부각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미니멀한 풍경 사진 
베허, 루셰, 발츠의 작품에 나타난 무미건조한 무표정의 도시 풍경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그 전환을 맞는다. 슈브리예가 주장한 사진적 객관성에 기반한 오브제이자 동시에 허구성을 허용하는 이미지이기도 한 제3의 객관성을 보유한 특수한 사진(specific pictures)은 2000년 들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용이하게 제작된다. 


요셉 슐츠(Josef Schulz) 역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구현한다. 그의 <Sachliches> 시리즈는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고 있으나 건물의 세부가 제거되어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이질적인 상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는 실재하는 건물의 사진을 찍고 그 세부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환원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비현실화되는 한편 평면 이미지임에도 미니멀리즘의 3차원적 물질성은 강하게 부각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라인 강의 사진을 찍고 디지털 후작업을 통하여 허구적으로 구축한 라인 강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라인 강변에 존재했던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혹은 공장 건물 등 수많은 세부들을 말끔히 제거하고 매끄럽게 다듬은 구르스키의 사진은 실재하는 풍경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라인 강이라는 허구적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풍경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찍은 그 사진은, 그러나 우리가 그 장소를 찾아가서는 직접 볼 수 없는 타블로로만 소비되는 풍경, 즉 상상적인 것이다. 


이들의 사진에서 우리가 늘 보는 장소, 위치, 공간, 사건의 현장은 우리에게 실제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인식론적으로 다가온다. 이 풍경 사진들은 실제 존재하는 어떤 것의 시뮬라크르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사진적 객관성을 골조로 한 단순화된 풍경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위의 자연’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식론적으로 전체 게슈탈트(total gestalt)를 보게 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어떤 진실을 관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진실이 아닌 가짜 풍경이라고 볼 수 없다. 미니멀리즘이 불필요한 외향을 제거하여 본질을 만나고자 것이라면 이들의 사진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버림과 환원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미니멀한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박이현 기자  2017-12-26 태그 이필, 미니멀리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