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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르네상스 회화에 바치는 헌사 _ 크리스티안 테그리아비니
크리스티안은 16세기 화가 아그놀로 브론치노에 영감을 받아 고풍스러운 사진 작품을 탄생시킨다.

현대 사진을 통해 15~16세기 예술을 소환한 크리스티안 테그리아비니의 작품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오마주한 그의 사진은 당시 귀족들의 우아하지만 무표정한 포트레이트에 그만의 재해석이 더해져 탄생되었다.
 

 

 Riatrtto di Signora in Verde, 2010, <1503> ⓒ Christian Tagliavini Courtesy of CAMERA WORK

 

Ritratto di giovane uomo con cappello piumato, 2010, <1503> ⓒ Christian Tagliavini, Courtesy of CAMERA WORK

 

 

아그놀로 브론치노를 생각하며
인간의 창의성이 철저히 무시되었던 중세 유럽. 이런 암흑기에서 탈피하고자 인간성의 회복과 인류 창의성을 강조하며 나타난 14~16세기 문화운동이 바로 르네상스다. 스위스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사진가 크리스티안 테크리아비니(Christian Tagliavini)의 <1503>과 <1406> 시리즈는 인문주의와 예술이 꽃피웠던 르네상스 미술을 오마주한 시리즈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안 테그리아비니는 이탈리아로 이주해 성인이 되기 전까지 파르마(Parma)에 살았다. 이탈리아는 국가 전체가 마치 하나의 박물관처럼 다양한 유적과 문화유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파르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업은 이탈리아에서 부흥했던 르네상스 예술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그가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16세기 화가 아그놀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의 작품을 접하면서다. 브론치노는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소속 화가였고, 당시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브론치노의 그림에는 귀족들이 등장한다. 고풍스럽지만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는 그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모습이다. 정갈한 피부 톤, 정적인 자세,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목’이다. 귀족들의 고상한 분위기를 강조하고자 다소 길게 그렸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테그리아비니는 브론치노의 초상화 속 특징을 고스란히 사진에 옮겨놓았다. 다만 목을 더 길게 강조함으로써 브론치노의 표현 방식에 경의를 표했다.

 

사진 속 인물의 목을 감싸고 있는 다소 과장된 러프 칼라(Ruff collar)는 특유의 세밀한 디자인 탓에 저절로 눈이 간다. 이 장식은 당시 귀족들의 지위와 부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정적이나 강도로부터 목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크리스티안 테크리아비니는 사진 속 인물의 러프 칼라를 고급 레이스나 비싼 액세서리 대신 종이로 직접 디자인해서 모델에 입혔다. 값싼 소재로도 얼마든지 우아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색다른 의도가 담겨있다.

 

 

 

Lucrezia, 2010, <1503> ⓒ Christian Tagliavini Courtesy of CAMERA WORK

 


타임머신을 타고
<1503>보다 1세기 이전의 회화를 오마주한 <1406>작업은 15세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lippo Lippi)가 그 대상이다. 다만 이 시리즈는 전작보다 자신의 주관을 더 많이 반영했다. 미래를 소재로 한 다소 비현실적인 영화에서 볼 법한 모자와 의상 디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정서를 그림에 묘하게 결합시킨 프라 필리포 리피의 당시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 사진 연출을 위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바로 모델 섭외다. 작가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을 섭외하기 위해 길거리 캐스팅과 함께 SNS를 활용해 많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모델은 모두 일반인이다.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전통 복식을 입었을 때 전형적인 포즈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본연의 느낌과 표정을 보여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르네상스 미술 작품을 오마주하는 이유는 인간 중심의 작품을 창조하던 당시 예술을 예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자신의 열정이 깃든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그의 사진과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호기심을 느꼈으면 해서다. 사람 실물 크기나 다름 없는 자그마치 160cm 크기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르네상스의 그 찬란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Donna Clotilde, 2010, <1503> ⓒ Christian Tagliavini Courtesy of CAMERA WORK

 

 

Ritratto di Fanciulla, 2017, <1406> ⓒ Christian Tagliavini Courtesy of CAMERA WORK

 

Christian Tagliavini 미술, 영화, 카드게임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를 사진으로 작업 한다. 의상 디자인, 메이크업, 보정 등 다양한 요소를 작업에 활용한다. 현재는 서커스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유럽 곳곳에서 전시를 연다. www.chrtisiantagliavini.com

 

김영주 기자  2021-03-23 태그 크리스티안 테그리아비니, 르네상스, 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