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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현대미술
길을 걷다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거리가 곧 미술관인 셈이다.

길을 걷다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건축법상 하릴없이 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와 기업, 지자체 등의 후원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거리가 곧 미술관인 셈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도 공공장소와 미술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속속 공개돼 눈길을 끈다. 

 

 

“신에게는 67점의 작품이 있습니다”  

해남 우수영문화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재)아름다운맵 그리고 당선된 지자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그곳에 거주하는 지역민의 예술 향유 및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다. 여기에는 규정된 미술이 아닌,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술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82곳,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시행한 공공미술 12곳, 그리고 2016년 14곳 등 전국 108개 마을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기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2014년을 기점으로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초창기 프로젝트가 전국 각 지역을 골고루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2014년부터는 지역 범위를 넓히기보다 깊이를 더하는데 중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해남 우수영마을’이다.


해남 우수영마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치렀던 울돌목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또한,  강강술래와 부녀농요, 남자 용잽이놀이, 들소리 등 다양한 전통 민속예술을 만들고 전승하는 곳이자 법정스님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84년 진도대교 개통으로 마을은 급속히 쇠락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영화 <명량>의 성공으로 마을은 사람들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되었다. 이에 기운을 얻은 주민들은 마을 부흥을 위해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 결과 해남군은 2015년과 2016년에 마을미술프로젝트에 당선됐다. 2017년에는 (재)아름다운맵에 ‘우수영마을-공공미술프로젝트’ 사업을 수탁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마을 전체가 갤러리라는 것을. 길을 걷다가 여기저기서 예술작품들이 눈에 띄는 건 다반사다. 이번 ‘우수영마을-공공미술프로젝트’의 주제는 ‘소울’이다. ‘정신’ 또는 ‘혼’을 의미하는 소울이자, ‘울돌목의 미소’에서 미소의 ‘소(笑)’와 울돌목의 ‘울’을 합친 말로, 문화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이순신 장군 후속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선정했다. 공공에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우리만의 미술을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느껴지는 주제다.


‘우수영마을-공공미술프로젝트’는 이순신 스토리텔링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처럼 보인다. 마을 전체가 마치 영화 <명량>을 보는 듯하다. 이순신 장군과 주민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 우수영마을의 전통 민속예술을 모티프 삼은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부산 감천마을이나 안동 신세동, 울산 고래마을처럼 예쁘지만 지역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특히 벽화)과는 분명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67점의 미술작품이 3년에 걸쳐 마을 입구부터 2km 구간 곳곳에 설치됐다. 입체, 평면, 부조벽화, 영상, 아카이브관, 만화갤러리 등 장르도 다양하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명량대첩을 그린 이강준의 <울돌목-바다가 울다>, BQ(김기연, 임도훈)의 <충무공이순신-일부당경 족구천부>, 정종한의 <난중일기>, 장수익의 <수군 332명 이야기> 같은 이순신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역시나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이강준의 <해남영창> 또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작업이다.


사람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주민 120명과 함께 공공미술 교육과 미술수업을 진행한 덕분에 미술의 문턱을 낮출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2년째 운영 중인 ‘마을 해설사’에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었다. 또한, 개막식 당일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어르신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고민거리였던 주민들의 소극적인 참여가 해결된 것 같아 보여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교통 문제와 부족한 편의 시설을 해결해야 할 듯싶다. 사람들을 오랜 시간 머물게 할 요소들이 미흡하다는 뜻이다. 우수영마을 방문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기 위해선 이런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킬러 콘텐츠를 킬(Kill)하는 듯한 움직임도 걱정이다. 우수영마을은 이순신 장군 외에도 법정스님 생가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생가를 재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마을주민협의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낡은 건물을 유지·보수하는 것이 아닌, 법정스님이 계셨던 당시의 초가집 형태로 조성, 무소유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탐방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관광 사업을 하겠다는 뜻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완성될 경우 생가가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례를 보더라도 생가 복원이 성공적인 경우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례가 이질감만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소유의 가르침이 소유라는 근시안적인 욕심에 매몰되는 것은 다시 쌓아올리고 있는 우수영의 금자탑을 허무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01 우수영 문화마을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를 가진 김광철의 ‘우수영 문화마을-Soul의 시작’ 02 마을주민이 이순신 얼굴이 되고, 마을풍경이 이순신의 가슴이 되는 오승아의 ‘불멸의 이순신-Soul Leader’ 03 망해루에서 바라본 우수영 마을 04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충심을 표현한 이강준의 ‘울돌목-바다가 울다’ 05 조선을 지킨 332명의 장수들을 기억한다는 의미를 가진 장수익의 ‘수군 332명 이야기’ 06 최근 ‘법정스님 생가터’를 재개발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07 문재인 대통령과 닮은 그림(오른쪽)으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강준의 ‘해남영창’(과거 해남 우수영의 곡식 창고)

 

헬로 아티스트_ 서울로 전시관(네이버문화재단 제공)

 

서울로 7017을 걷다 만나다  

헬로 아티스트_ 서울로 전시관
 

지난 5월 마포구 만리재로와 중구 퇴계로를 연결하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도로형 도심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를 가능케 한 프로젝트의 이름은 ‘서울로 7017’. 개장 첫날 1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현재 이곳은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 ‘서울로 7017’에 현대미술 전시관이 개관했다. 서울로가 가진 공공성에 통통 튀는 현대미술이 더해져 탄생한 ‘헬로! 아티스트_ 서울로 전시관’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네이버 메인 화면에서 ‘헬로! 아티스트’ 페이지를 클릭해봤을 것이다. ‘헬로! 아티스트’는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온라인 플랫폼이다. 그동안 네이버문화재단은 이곳을 통해 젊은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 소개는 물론 그들의 창작활동과 전시 기회를 지원해왔다. 


그것의 연장선으로 기획된 ‘헬로! 아티스트_ 서울로 전시관’은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생긴 전시관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현대미술을 한 번이라도 접하게 된다. ‘시민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전시 기획으로 현대미술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네이버문화재단의 의도와 부합하는 대목이다. 이곳의 첫 번째 전시 주인공은 회화 작업을 하는 이우성 작가. 전시에서 그는 캔버스가 아닌 천에 서울이라는 삶의 공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작업을 선보였다. 공간의 지향점인 ‘공공성+현대미술’과 비슷한 맥락의 작업이다. 전시 이후에는 정혜련 설치미술가(9월), 김종범 디자이너(11월), 최윤석 작가(2018년 1월) 작업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소 아쉬운 점은 ‘헬로! 아티스트_ 서울로 전시관’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 점의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점은 옥에 티로 느껴진다. 접근성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로 폭이 좁은데다가 곳곳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로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가보니 전시장 입구를 스쳐가는 일도 발생했다. 전시장을 눈에 띄게 하는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곳 방문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더운 날 태양의 남중 고도가 높은 시간대의 방문은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 도로 바닥에서 반사된 빛으로 인해 전시도 보기 전에 땀에 젖어 지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는 건 덤이다. 

 

최정화, 골든 크라운

 

리조트가 곧 미술관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지난 4월 20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복합 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Paradise City)’가 개장했다. 축구장 46배 크기인 약 10만 평 부지에 자그마치 1조 3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투입된 화려한 리조트가 생겨난 것. 외관은 마카오 최고급 호텔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그곳에 설치된 예술작품들의 화려한 면면이다. 파라다이스시티에는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도 보기 어려운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자그마치 2,700여 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정문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건 분수에 설치된 최정화의 ‘골든 크라운’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왕관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그 주변에는 수보드 굽타와 박찬걸의 작품이 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파라다이스시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데미언 허스트의 ‘골든 레전드’를 만나볼 수 있다. 신화적 동물인 페가수수를 실재의 형상물로 구성한 작품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뮌의 ‘유어 크리스탈’과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위아래로 배치되어 있다. 파라다이스시티를 위해 제작한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파라다이스 프루스트’도 있다. 작품 높이가 4.5m로 세계 최대 크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리조트 곳곳에 로버트 인디애나와 쿤 반 덴 브룩, 피터 핼리, 김호득, 이세현, 장승택 등의 작품들이 있다. 숙박을 한다면 객실 내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파라다이스시티는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굳이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가지 않아도 될 법한 화려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선뜻 방문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위치적인 특성 때문이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서 자기부상열차로 환승해야 한다(도보로 갈 경우 약 25분 소요). 가는 동안 “멀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다. 하루를 투자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작품 관리’다. 사드 여파로 인한 관광객 감소로 파라다이스그룹이 적자로 전환됐는데, 관광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향후 고가 작품들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아져도 골칫거리일 듯하다. 작품 관리·감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관광객이 위주였던 성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들의 아슬아슬한 태도가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경우 작품을 어떻게 관리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이현 기자  2017-09-08 태그 공공미술, 울돌목, 서울로, 파라다이스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