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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사진으로 쓰는 시_이정진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진 속 피사체가 존재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다.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진 속 피사체가 존재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다. 
한지 위에 그려진 이정진의 사진 속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사물이 등장하지만, 
왠지 모를 인간 내면의 고독함과 외로움, 쓸쓸함 등의 감정이 느껴진다. 마치 자화상을 보는 것처럼.
사물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중첩된, 다시 말해 합일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냈기 때문일까. 
현재 스위스 ‘포토뮤지엄 윈터투어’에선 그런 그녀의 작업을 총망라한 전시 <Echo>(~2017.1.29)가 진행 중이다.

 

Wind 07-60 ⓒJungjin Lee

Wind 06-56 ⓒJungjin Lee

 

American Desert III Self 94-16 ⓒJungjin Lee

 

"이정진의 작업에는 숭고한 삭막함과 아름다움이 있고, 감정적인 강력함이 있다. 또한 어떤 공간과 그곳에 있는 피사체를 섬세하게 묘사하지만, 지형학적이지는 않다. 어떤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며, 때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도 포착한다. 텅 빈 거리를 걷다 만나게 되는 물과 식물, 땅의 그림자 등을 담아낸 <Wind> 시리즈가 그렇다. 이 작업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담아낸 사진이다. 다만 외적인 것에 집중하진 않는다. 다양한 레이어를 내포한 채 메타포(은유)로서 작동한다. 이는 우리가 대상의 본질(내적 세계)을 좀 더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  - 리즈 웰스(Liz Wells) 플리머스대학 사진문화전공 교수

 

사진으로 쓰는 시

한지에 감광유제를 발라 코팅한 뒤 그 위에 사진을 인화한다. 한지는 피사체의 디테일을 강조하는, 회화적인(아날로그적인) 질감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크기와 형태도 작가 생각에 맞춰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는 피사체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그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진을 구성할 때 충분한 여백을 주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롯이 피사체에만 집중하고 소통하던 당시의 공기를 체험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군더더기 없는 사진을 보는 것은 한 편의 정갈한 시를 읽는 것과도 같다.

자화상

사진이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작업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물론, 시리즈마다 풀어가는 내용과 녹아든 감정은 각각 다르다. 특히, 마음에 생채기가 난 상태로 작업했던 <American Desert Ⅱ> 사진(회고전 <Echo> 포스터)에는 지금도 보기 힘들 정도로 깊은 내면의 아픔이 담겨있다. 25년 전에 작업한 것인데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기장을 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다만, 사진을 보는 사람이 이러한 느낌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사진이 품고 있는 감정이나 의도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기운생동, 그 찰나의 시간

<Wind> 시리즈까지는 셀프 포트레이트처럼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미지에 오버랩했다. 이후 <Unnamed Road>와 <Everglades>시리즈부터는 사물을 관조하는 입장이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물과 풍경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서 그런 듯하다.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피사체를 보게 됐다는 의미다. 단, 대상을 미리 판단하지 않고, 충분히 소통하며 함께 존재하는 순간을 공유하는 태도는 여전히 견지한다. 원초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그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 순간의 기운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정진 홍익대학교와 뉴욕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뉴욕에 거주하는 동안 미국 사막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서울에 거주한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국과 동양의 정서를 담은 <Pagoda>, <Thing>, <Wind> 시리즈를 제작했다. 2009년 다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는 이스라엘 공동프로젝트에 참여해 제작한 <Unnamed Road> 등을 꾸준하게 발표했다. 이정진의 작품은 페이스맥길(PaceMacgill) 갤러리, 아파처(Aperture) 갤러리 같은 미국과 유럽 갤러리, 미술관을 통해 발표되었으며, 현재 그녀는 뉴욕 하워드 그린버그(Howard Greenberg) 갤러리, 파리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갤러리 의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은 메트로폴리탄과 휘트니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박이현 기자  2016-10-24 태그 이정진, Wind, Echo, 한지